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외삼촌과 한 약속

2008-11-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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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삼십년 전, 내가 일곱 살 때 외삼촌은 혼자 미국으로 건너 가셨다. 우리 집에 그 많던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미국으로 건너 가셨던 외삼촌은 나에게 그렇듯 짧은 추억을 만들고 미국에 가셨고,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오실 때에는 여행가방 가득 가족 모두에게 줄 미국과자나 옷이나 장난감을 넣어 오셨다. 항상 바빠 보이셨던 외삼촌 덕분에 그 선물을 받는 그 순간만 기억나고 나는 그렇게 외삼촌의 선물로 훌쩍 자라고 있었다. 외삼촌은 어린 나에게는 레이스가 고운 우윳빛 드레스를 선물해 주셨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홍색 작은 어린이 재봉틀도, 연보랏빛 두꺼운 겨울 잠바도 해마다 선물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스무 살이 되자 이제는 향수를 사다주시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나는 외삼촌 덕분에 대학 내내 종류별대로 많은 향수를 모으게 되었고, 그 향수를 뿌리고 남자친구도 만나고, 데이트도 하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예전에는 외삼촌께서 가져다주시는 선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 미국에서 살게 되며 한국에 나갈 때마다 가족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보니 외삼촌께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시고 그 많은 가족들의 선물을 준비하셨을지 그리고 그 준비를 하시며 얼마나 설레셨을지 지금에야, 지금에야 서른이 훌쩍 넘어 알게 되었다. 그 먼 미국 땅에서 외삼촌께서 어찌 지내셨을지 지금에야 상상이 되고, 외삼촌이 어떤 마음이셨을지 지금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항상 바빠 보이시고, 자심감에 넘쳐 보이시던 외삼촌이 나의 결혼식에 오시고, 우리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나의 신혼집에 오신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의 눈에는 많은 대화를 해 본적 없던 외삼촌은 그날따라 유난히 즐거워 보이셨고, 남편이 유학을 계획 중이라는 그 말에 너무도 즐거워 하셨다. 미국에 우리 부부가 오면 외삼촌은 너무 신나실 거라고 정말로 좋아하셨다. 그러며 신나 하시는 외삼촌 덕분에 나도 덩달아 미국에 가는 것이 갑자기 신이 났었다.


미국에 가면 외삼촌이 계신다. 나는 하나도 외롭지 않을 거라 그렇게 생각하며 “외삼촌, 조금만 기다리세요. 남편이 대학원 마치면 곧 유학 갈 거예요. 그 때는 미국에 저희 집에 또 놀러오세요.” 그렇게 말하며 마주보며 웃었는데.

우리 집에 다녀가시고, 미국에 무사히 들어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그 다음 날 아침 나는 외삼촌께서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화로 신문으로 접할 수 있었다. 너무도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고, 내게는 너무도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외삼촌과 약속한 대로 미국에 무려 8년 전에 왔지만, 그리고 외삼촌이 살고 계셨던 이 엘에이에 이사까지 왔지만 외삼촌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에도 나는 외삼촌을 생각했고, 살던 곳에서 엘에이로 이사를 내려오면서도 정말 많이 외삼촌을 생각했었다. 그러며 ‘외삼촌이 살아계셨다면 정말,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하며 나는 종종 이곳에서 사셨던 외삼촌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외삼촌, 12년 전 제가 외삼촌과 한 약속을 지켰는데 외삼촌을 마주 뵐 수가 없네요. 하지만 제가 외삼촌이 잠들어 계신 곳으로 이번 주말에 찾아뵐 게요. 외삼촌 좋아하시는 열무김치랑 맛난 반찬 만들어서 놀러갈 게요. 외삼촌 저희가 보이시나요? 정연이가 이 미국에, 이 엘에이에 살게 되었단 말이에요. 외삼촌, 정말 외삼촌이 많이 그리워요.’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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