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11-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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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리

피아노 뚜껑 위로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있다. 승욱이 피아노 선생님을 찾는 일이 어찌나 어려운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여기 저기 수소문 중인데 피아노 선생님을 찾는다는 사실조차 잊을 무렵 가까운 친구 집사님의 딸을 가르치는 학생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넌지시 물어보았더니 너무나 반가워하며 승욱이를 가르쳐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쉬었던 (?) 승욱이가 과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피아노를 시작하기 한주 전에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으니 일분도 되지 않아 자리를 떠나버린다. 흠… 피아노 치는 것을 잊어버린 게야… 에고고… 시간이 너무 지나가 버렸어.


토요일 오후, 사랑의 교실이 끝난 후 집에 와서 첫 번째 피아노 시간이 되었다. 이제 갓 대학교 1학년인 선생님은 어찌나 마음이 여린지 너무 나긋나긋한 소리로 “안녕, 우리 피아노 한번 쳐볼까?” 선생님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의식한 승욱이가 더듬으며 “이 사람은 누구지?” 이런 표정이다. “오늘부터 나랑 피아노를 칠거예요. 승욱이 잘 할 수 있죠? 선생님이 서툴러도 이해해 줘” 드디어 피아노 의자에 앉히는 것에 성공. 그런데 이 녀석이 몸을 배배꼬며 부끄러워서 자꾸 선생님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 아닌가?

어럽쇼?? 선생님이 여자인 것을 아는 거야? 너무 부드럽고 예쁜 목소리의 선생님 앞에서 몸을 못 가누고 있네? “야, 이승욱 뭐하는 거야? 지금 부끄러워서 그런 거야? 선생님을 여자로 아는 거야?” 선생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한 곡을 치고 마치면 어김없이 선생님은 “정말 잘 했어요. 우리 승욱이 제일 잘해요. 짝짝짝…” 박수까지 쳐주니 흥이 나다 못해 어깨를 들썩이며 열심히 치고 있다.

양손을 선생님의 고운 손 위에 올려놓고 피아노를 치니 어찌나 반듯하게 잘 앉아서 치는지…” 승욱이가 아홉 살짜리 비장애인 아이보다 집중력이 뛰어나요. 꼬박 이렇게 40분 동안 앉아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거든요.” 그 말에 나도 괜히 으쓱이다… 에구… 팔불출 모자 같으니라고…

가끔 꾀를 부리며 다리를 은근슬쩍 의자에서 내려오려 밑으로 뻗으면 난 “어허!! 승욱이 똑바로 앉아!! 아직 멀었어.” 마치 엄마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가 아닌가를 시험하듯이 가끔 나의 핀잔을 즐기며(?) 피아노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같은 곡을 다섯 번 이상 반복해서 치게 하면 다른 곡으로 넘어가자고 손가락을 오므린다. 싫증을 금방 내기 때문에 선생님이 미리 많은 곡을 준비해 온다. 첫날부터 선생님과의 호흡이 환상이었다.

엄마 마음은 그냥 첫 날이니까 잘 했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매번 앉아서 열심히 선생님의 칭찬을 들으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아직까지 스스로 곡을 완벽하게 치진 못하지만 손가락이 미리 다음에 칠 건반에 가 있는 것을 보면 음악 감각이 없진 않은 것 같다.

이번 선생님이 오랫동안 승욱이의 선생님이 되어 준다면 우리 집 피아노 소리가 끊이지 않을 텐데… 선생님도 열의가 대단하고 승욱이도 열의가 대단하니 이번에는 둘이 뭔가 일을 낼 것 같다. 매번 열심히 준비해 오시는 선생님도 너무 감사하고 열심히 의자에 앉아서 피아노에 열중하는 승욱이도 고맙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승욱이도 아무 것도 아닌 건반의 두드림에 엄청난 칭찬이 더해지니 매번 더 열심을 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무리 장애가 있어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열리는 것이 칭찬인가 보다. 단순한 원리를 난 왜 여태껏 몰랐지???

승욱이가 오는 날은 피아노 소리가 담을 넘는다. 선생님과 함께 누르는 건반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다. 승욱이의 손가락 근육에 힘을 길러주려 시작한 피아노 레슨이 이젠 승욱이의 전공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엄마는 기대가 또 커진다… 승욱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우리의 희망을 부풀려 주는 이스트 같다. 넌 할 수 있어!!!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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