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10-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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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아버지… 민아입니다. 아침저녁 코끝으로 들어오는 냄새는 분명 가을입니다. 싸리한 이 냄새는 아련히 기억 저편의 희미한 기억들을 불러오는 매개체인 것 같습니다.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아버지의 기억이 또 저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신지 벌써 3년이 되었네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의 시간으로 온듯하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났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시간이 약이라고…’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젠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망각이란 것을 주지 않으셨다면 우린 어떻게 살았을까요. 매일 매일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살았겠죠. 우리 가족에겐 정말 시간이 약이 되었습니다.

지난봄, 꿈에서 아버지를 뵈었죠.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던 양복을 입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오는 틈에서 저를 향해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 한 눈에 아버지를 알아봤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전 달려가 아버지를 붙잡았습니다. 넓은 가슴으로 너무 따뜻한 팔로 절 안아주셨죠. 전 아버지를 만난 기쁨보단 저의 힘듦을 아버지께 말을 했어요. “아버지, 너무 힘이 들어요. 저도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가면 안돼요? 저도 좀 데리고 가주세요…” “안 된다. 조금만 더 참아. 넌 할 수 있어.” “아니요, 제 어깨가 너무 무거워요. 지금 아버지 따라갈 게요.” 눈을 떴을 땐 베개 위에 흥건한 눈물만 가득했습니다. 한참을 꿈에서 깨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죠.

유독 마음이 약해질 땐 아버지가 더 그리웠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들을 때,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생겼을 때, 엄마가 편찮으실 때, 승욱이가 잠을 자지 않고 힘들게 할 때, 언니가 몰래 숨어서 울 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낸 일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난 3년간 또 여러 번의 아프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콩 볶듯이 살았습니다. 사실 피곤하다는 말조차도 저에겐 사치라고 생각할 정도로 하루 24시간을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만큼 사는 것이 고단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를 꿈에서 뵈었을 때 나를 좀 데리고 가달라고 조른 것 같아요.

며칠을 아버지를 꿈에서 만난 모습과 대화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서는 정해져 있어도 하늘나라로 가는 순서는 정해져있지 않을까. 과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어떤 것일까.

하나님의 뜻과 시간표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이젠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지난 3년간 그 어느 때보다도 지경을 넓히시고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통과하면서 저의 마음을 강하게 하신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전 아직도 미성숙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언제나 의지박약으로 아버지를 괴롭혔을 겁니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전 게으르고 언제나 나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겁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떠난 후에야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하셨던 모든 것이 사랑에서 뿜어져 나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식은 절대 부모 마음을 앞지를 수 없나봅니다. 생각이 미련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행동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항상 죄송합니다. 아이들 넷을 키우면서 더욱 더 부모 마음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아이들 잘 키우겠습니다.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저도 아이들에게 아버지만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저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겸손히 기다리며 묵묵히 이 길을 가겠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라고 꿈에서 하셨던 그 말씀이 저에게 지금 하시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 가을 냄새가 또 날 때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그땐 지금보다 더 성숙한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또다시 꿈에서 만나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아버지 꿈에서 만나요…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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