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자세 바이어들 “이것 해 줘, 저것 해 줘”

2008-09-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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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들은 죽을 맛이고 바이어들은 기세가 등등하다. 팔려고 내 놓은 집들은 지천으로 널렸고 가격은 속수무책으로 밀리니 집을 꼭 팔아야만 하는 입장인 셀러는 바이어들의 처분만 기다린다. 사정이 이러니 바이어들은 요즘 마음대로 배를 내밀고 셀러를 대한다. 셀러들이 버티다 버티다 이젠 어쩔 수 없는 입장에 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가격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이젠 기본이다. 셀러들도 가격에 관한 한 이미 상당 부분 포기했다. 하지만 최저가격 만으로는 바이어를 붙들 수 없다. 요즘 바이어들은 요구하는 것이 많다. 퍼니스가 오래됐으면 새 것으로 교체해 달라고 하고, 드라이브웨이에 금이 가 있으면 새로 고치고, 카펫은 새 것으로 갈아 달라고 요구한다. 비용은 물론 셀러 부담이다. 때로는 쥐어짜겠다는 자세로 달려드는 바이어들도 있다. 하지만 키를 쥐고 있는 쪽은 바이어다. 필사적으로 팔아야만 하는 셀러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약점 삼아 최대한 받아내려고 한다. 중간에서 거래를 중재하는 에이전트들이 봐도 너무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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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만 깎아 줘서는 집 못 팔아
클로징 비용은 기본, 홈 워런티 등
철만난 바이어들 요구사항도 많아


불과 수년전 붐 시절 셀러 앞에서 처분만 기다렸던 바이어들이 ‘이젠 내 차례’라는 태도로 변했다. 일부 바이어들은 심하게 짜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에이전트들도 혀를 내두른다.
겨울이 긴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바이어들이 히팅 오일 탱크를 가득 채워달라고 요구하고 캘리포니아에서는 클로징 비용을 셀러들이 내준다. 또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바이어들이 가전품 1년 워런티를 셀러가 사줄 것을 요구한다.
새 센트럴 에어컨 시스템, 콘도 어소시에이션 비용 1년치, 하와이 2주 여행도 요즘 셀러들이 집을 팔기 위해 흔히 내거는 인센티브들이다. 가격 칼질만으로는 입질도 없기에 제시한 고육책들이다.
요즘 바이어들은 각종 요구사항들을 계약서에 올린다. 붐 시절에는 집을 현 상태 그대로(as-is) 수용하고 셀러의 세금도 일부 내주는 것이 예사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됐다.
계약서에 조건이 많이 달린다. 전에는 홈 인스펙션 통과 정도를 계약 해지 조건으로 달았지만 요즘은 여러 가지 요구조건들이 포함된다. 주택과 이웃의 환경과 지역 서비스, 시설에도 대단한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을 요구한다. 홈 인스펙션도 전에는 한 명만 쓰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예사로 까다롭지가 않다. 라돈 검출 여부, 납 성분 페인트를 밝혀내기 위한 해당 분야 전문 인스펙터를 불러야 하고 파이어플레이스 등 석조물 전문 인스펙터의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무슨 잘못이 나오면 수리와 비용은 모두 셀러 부담이다. 붐 시절 같으면 콧방귀를 뀌었을 요구사항들이지만 셀러들은 군소리 없이 수용하는 편이다.
셀러들은 지붕이나 퍼니스와 같은 큰 비용항목을 포함 홈 인스펙션에 대해 매우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격에 대해서는 이미 크게 물러선 뒤다.
홈 인스펙션에서 드러나는 작은 수리는 물론이고 큰 비용이 드는 수리도 바이어쪽으로 미루는 법이 없다.
한 바이어는 홈 인스펙션에서 전기 수리 875달러, 플러밍 150달러, 새 키친 포셋 242달러, 굴뚝 수리 735달러가 들었는데 모두 셀러가 고쳐 주고 비용도 부담했으며 그 뒤 큰 비용이 드는 터마이트 및 석조물상의 하자가 발견됐지만 가격을 재조정하여 셀러가 부담했다고 전했다.
일부 바이어들은 클로징 순간까지 협상을 멈추지 않는다. 셀러의 약점을 잡아 마지막 순간까지 한 푼이라도 짜내려는 고약한 바이어들도 적지 않다. 메인주의 한 에이전트는 히팅 오일 탱크를 채워달라는 바이어도 있었다며 그 바이어는 7만5,000달러면 아주 싼 가격이었는데 또 가격을 깎더니 다시 히팅 오일 탱크를 채워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셀러는 200 갤런 기름 값 800달러를 또 떠맡아야 했다.
요즘 클로징 비용은 많은 경우 바이어에겐 무료다. 거의 대부분 셀러가 클로징 비용을 낸다고 오렌지카운티의 한 에이전트는 전했다. 집값을 이미 크게 깎은 뒤에 또 다시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심하지만 바이어 마켓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이 에이전트의 고객인 셀러는 1만달러의 클로징 비용을 부담했다.
심지어 지방세금도 협상 테이블에 오른다. 라스베가스의 한 에이전트는 4베드룸 은행 차압 주택을 50만달러에서 40만달러로 깎은 뒤 클로징 비용 6,000달러에 얹어서 양도세 1만1,000달러를 은행 쪽에 부담시키고 거래를 매듭지었다.
셀러의 이런 울며 겨자 먹기 식 양보는 주택 시장의 고전이 계속 되는 한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요구라 해도 거절했다간 바이어는 다른 셀러에게로 날아가 버리니 어쩔 수가 없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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