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신앙의 스승’ 어린이

2008-08-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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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담에 어린이들은 “눈에만 보이고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잘 보이는 안전한 곳에서 얌전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이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던 오래 전에 나온 말입니다. 전례적으로 보면 한국문화는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방관하는 것에 더 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도 “애들은 저리가”하면서 어린이들은 먹는 것, 노는 것, 중요한 모임에서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예수님께서 한참 공터집회를 하고 계신데 어느 상식 없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은혜롭게 말씀을 경청하던 분위기가 산만해지자 제자들이 나서서 “애들은 저리가” 하며 어린이들을 뒤로 보내는데, 예수님께서 이를 보시고 설교를 중단하시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하나하나 무릎에 앉히시고 축복을 하시며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말씀의 핵심이요 결론이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니. 과연 어떤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일까요? 어린 아이들은 철석같이 믿습니다.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우리 아빠가 제일 힘이 세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엄마가 “호” 해주면 금세 낫고, 아무리 무서워도 아빠 손만 잡으면 수퍼맨 옆에 있는 듯 든든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순진합니다. 좋으면 웃음을 감추지 못하지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보다 더 즐거운 소리가 있을까요. 그들의 눈물은 아픔과 슬픔의 솔직한 표현입니다. 필요에 의해 과장되어지고 무드에 따라 연기되어지는 어른들의 눈물과는 다르지요. 거짓말을 하면서도 거짓말을 한다고 얼굴에 쓰여 있는 것이 어린이의 순진함입니다. 그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합니다.


나의 엄마니까 와서 안기고, 나의 아빠니까 보고 싶고, 나의 곰인형이니까 소중한 것뿐입니다. 다른 이유도, 비교도, 분석도 하지 않습니다. 친구와 싸워도 5분 후에는 다시 얼굴을 마주보며 깔깔거리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열심히 질문에 손을 드는 것이 어린이들입니다. “용서하고 기억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들밖에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갖으려면 욕심을 줄여야 합니다. 백만달러는 없어도, 단돈 십달러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어린이입니다. 요세미티 캠핑장이 아니라도, 집 뒷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훌륭한 캠핑휴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어린이입니다. 일류 레스토랑보다도, 맥도널드에 가면 더 좋아하는 것이 어린이들입니다. 작은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고, 평범한 것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린이들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애들은 저리가” 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구석방으로 몰고 가서 물질적인 것들로 베이비시팅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는 어린이들과 많은 시간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그 순수한 마음과 조건 없는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어린이들 중심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연속극을 보는데 방해되고 예배시간이 부산스러우면 좀 어떻습니까. 예수님도 어린이들을 반기셨는데. 우리 모두는 신앙의 스승인 어린이들을 잘 모셔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길의 가이드이니까요.

이 용 욱
(목사·하나크리스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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