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노파심

2008-07-05 (토)
크게 작게
촬영이 중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곧 작가언니도 한국으로 돌아간다. 교육관계자들의 인터뷰 하는 일과 승욱이 학교를 찍으면 어느 정도 촬영이 끝나는 거다. 대충 중요한 그림이 나온 것 같다. 방송프로듀서(피디)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은근히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왜 장애프로그램은 하나같이 눈물을 짜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장애가족이 다 슬프게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설마 승욱이가 나오는 프로그램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다른 프로그램하고 같진 않겠죠?” “글쎄요...” “아니, 대충 어떻게 편집할 것인지 피디님이 생각하는 것이 있잖아요. 저에게만 살짝 말해주세요.” 그저 피식 웃는 것으로 언제나 대답을 대신할 뿐이다.
승욱이 교육에 관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어렵게 연결을 했다. 승욱이 UCLA병원에 가서 청력검사를 하는 장면도 찍었다. 학교도 찍고 기숙사도 찍고, 또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도 찍고, 주말에 나들이 가는 것도 찍고, 승욱이의 일상도 찍고, 웃는 거, 우는 것, 화내는 것, 짜증내는 것, 고집부리는 것, 조는 것...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점점 다큐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너무 궁금하다. 모든 것은 피디의 머릿속에 내용이 있는 거다. 이제 며칠 후면 촬영팀이 돌아간다. 처음 만난 날의 반가움이 헤어질 때의 아쉬운 마음으로 바뀌고 있다. 승욱이를 기숙사로 데려다 주면서 함께 피디와 차를 타고 가며 진지하게 물었다. “이제 정리가 되었죠? 다큐의 방향은 잡았나요?” “네” 역시 짧게 대답한다.
“피디님, 지난번에 잠깐 말씀드렸다시피 심파로 눈물 콧물 뽑아내는 다큐로 나오면 저 많이 슬플 것 같아요.” “전 그저 본대로 느낀 대로 찍힌 대로 편집할거예요.” “피디님, 저희 가정에서 지난 2주간 합숙해서 아시겠지만 슬프게 컨셉을 잡고자 하면 한없이 슬프게 나올 수 있는 요지가 많은 가정인 거 제가 압니다. 노파심에서 다시 말씀드리는 거예요. 기획의도 그러니까 처음 잡았던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시나 말없이 미소 짓는 우리피디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방송을 힘들게 결정한 것은 장애가정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장애가정 특히 한국의 시청각 장애우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장애가정이 다 아프게 슬프게 힘들게 사는 것에 중점을 둘까봐 자꾸 나의 잔소리가 늘어가는 거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신신당부를 했다. “걱정마요. 민아씨, 절대 승욱이네 가정이 이 다큐 때문에 힘들지 않게 할게요. 아주 밝아요. 찍은 내용을 다시 봤는데 너무 맑고 경쾌하고 밝아요. 있는 그대로 편집 들어갈 겁니다.” “피디님, 다른 장애가정에 누가 되는 일이 없게 해주세요. 저희 때문에 누구도 상처받는 일이 있으면 안됩니다.” “알았어요. 지금 보니 민아씨 은근 소심하네요.” “네, 저 소심녀예요. 그러니까 제가 부탁한 말 저의 진심을 꼭 잊지 말아주세요 네에??”
피디와 몇 번을 다짐했는데도 이놈의 노파심에 계속 확인하고 있다. 지겨울 텐데 물을때 마다 “네”라고 대답하는 피디도 참 성격 대단하다.
장애인하면 아직까지 우리의 머릿속에는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당하고, 어렵고, 어둡고, 힘들고, 우울하고, 소망이 없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못할 것이 거의 없는 시대를 지금 살고 있는데 우리의 고정관념이 그것을 깨치지 못하고 있다.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많은 장애우들의 희망의 언어를 대변하기 위해 난 계속해서 승욱이 이야기를 쓰고 방송도 하고 책을 내려고 결심한 것이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그 어느 것도 변화할 수 없고 그저 진퇴되고 퇴화하기 때문이다. 이젠 장애인을 두고 소망의 단어가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그것이 변질될까 난 또다시 노파심에 묻는다. “피디님, 저의 진심 아시죠? 방송 의도말이에요.”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