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내 시간만큼이나 소중한 타인의 시간

2008-06-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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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택건설사마다 가격을 내리고 많은 크레딧을 제공하며 관리비가 비싼 고층 콘도의 경우 2~3년까지 관리비를 대신 내주는 방식 등으로 바이어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 에이전트들에게 보다 높은 커미션을 제공하는 건설사들도 있다.
이에 많은 잠재적 바이어들이 서서히 이들 고층 콘도 분양에 몰리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가끔 누가 보아도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많은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에이전트가 광고를 보고 온 젊은 손님에게 타운에 있는 한 콘도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손님이 마음에 들어 해 어떡해서라도 보다 더 좋은 조건에 손님이 구입할 수 있도록 건설 사와 딜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건설사 세일즈 오피스에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 손님이 에이전트 없이 사면 에이전트에게 나가는 비용만큼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에이전트 없는 걸로 하고 얼마까지 줄 수 있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전해들은 에이전트는 집을 처음 사는 바이어라서 모르니까 그러려니 하면서도 일종의 허탈함과 배신감까지 들어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아주 가끔은 싸게 살 수도 있겠지만 어느 건설사도 분양을 하게 되면 에이전트에게 커미션 비용 등을 미리 잡아놓기 때문에 에이전트가 없는 손님이라도 그 만큼 가격을 인하해 준다던가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에이전트에게 커미션을 제공하는 건설사가 혼자 오는 손님에게 커미션 비용을 빼준다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거니와 많은 에이전트나 관련 업계로부터 외면을 당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간혹 일부 바이어 중에는 이렇게 남보다 더 잘 샀다고 믿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에이전트를 통해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로는 적당히 영리한 사람이 지나치게 영리한 사람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하나는 약속의 중요함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이미 각자의 경험이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이전트를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약속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집을 보여줄 때의 약속을 많이 잡는데 간혹 약속 1시간 전에 취소한다고 연락을 해주는, 그나마 고마운 분들(?)이 있는가 하면 약속시간이 넘어도 전화조차 없이 약속 장소에 안 나오는 분들도 있다. 이미 이러한 일들을 많이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들을 또 다시 경험하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씁쓸한 감정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 이러한 일이 또 있었다. 광고를 보고 연락해 온 손님이 시간이 토요일 밖에 없어 무조건 그 날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주말 스케줄이 꽉 차 있던 터라 중간에 시간을 만들기 어려웠지만 이른 시간 약속을 하고 다음 손님과의 약속시간을 조금 늦춘다면 가능해 보였다. 아침 8시30분에 만나기로 한 손님이 9시20분쯤 전화가 왔다. 10분이면 도착한다는 것이다.
다음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 보자고 정중히 거절했음에도 손님은 1시간 정도 늦게 온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기가 시간을 내서 왔기 때문에 무조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섯 집을 보여드리려고 했던 계획을 세 집만 보여드리고 다음 약속 장소로 향했다.
물론 그 날 다른 약속들도 모두 시간이 밀려 손님들에게 하루 종일 만나는 첫 마디가 ‘늦어서 죄송합니다’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스케줄이 차 있음에도 무리하게 계획을 잡은 나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아직도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모든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가슴 속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근본이 필요하다.
(818)357-7694
에릭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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