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들여다 보기- 가정폭력과 911

2008-06-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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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의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 첫 가정폭력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수많은 가정에서 수많은 모양의 폭력들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흔하게는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고, 경쟁사회에서 밀리거나 순한 남편이 사나운 아내에게 폭행 당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노부모나 어린자녀를 학대하여 부상을 입히는 경우도 많다.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성폭력과 정신적, 경제적 학대는 더 빈번하다.


한인 이민가정에의 가정폭력도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가정폭력에 대한 의식이 높고 법의 통제가 강화되어서 조금 나은 듯하지만, 한인 가정은 폭력에 대한 무감각과 법의 활용에 대한 한국적인 부정적 정서가 작용하여 가족 모두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폭력의 사이클을 돌리며 살아간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당해온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마비가 되어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두려움으로 살아간다.

가정폭력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911에 대한 생각이 분분하다.

얻어맞는 아내가 남편의 폭행에 911을 불러야 할 것인가? 남편을 치고 자해행위를 하며 위협하는 아내에게 911을 불러야 하나? 아이에게 자국이 남을 정도의 폭력을 하는 부모에게 911을 불러야 하나?

대답은 “911을 불러 도움을 받아야 한다”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이 대답처럼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사람들은 911 부르기를 주저한다.
무엇보다도 경찰을 부르면 가족이 잡혀간다는 피해자 자신의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인다.

또 아무리 폭력을 행사한다 해도 어떻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경찰을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윤리적 머뭇거림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일하는 배우자가 잡혀가서 돈을 못 벌게되는 경우, 혹 체포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변호사를 사서 일처리를 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저 질질 끌려가며 폭력행위를 연장시킨다.


하지만 힘 있는 배우자나 부모는 가족에게 폭력을 해도 괜찮지만, 힘없는 피해자는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경찰을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은 윤리적 모순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경찰의 체포 같은 위기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간다.

하지만 가정폭력 같이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평생의 고통을 가져다주는 심각한 병을 고치기 위해서, 수술과 같은 일시적 위기 상황은 오히려 큰 변화에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가해자가 스스로는 변화할 수 없는 고질병을 법적인 힘을 빌어서라도 교육과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종종 처음엔 의무적 교육과 치료활동에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통찰을 얻게 되고, 깊이 쌓인 분노를 치유받게 되어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게 된다.

가정폭력의 원인은 깊고도 다양하여 오랫동안의 전문적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어떤 가족의 폭력행위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911을 부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나운 사람도 경찰의 개입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은 가족 모두를 죽게 하는 암이다.

자녀나 배우자에게 평생가는 고통을 안겨주는 가정폭력에 911을 부르고 수술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라. 911의 위기가 회복과 치유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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