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는 삶- 마음의 창

2008-06-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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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것은 글이나 말도 있지만 상대방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다.

헌데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으리라 보지만 예전에 한국에서는 윗사람과 대화할 때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바른 행동이고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무례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 듣는 이의 입장에서 들리는 말만 갖고는 상대의 의중을 알아내기가 어렵고 반대로 말하는 이의 위치에서는 듣는 이가 수긍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반발을 하고 있는 것이지 알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비록 부드러워도 눈에는 엄한 경고가 들어있을 수 있는가 하면 말은 심히 단호해도 말하는 이의 눈에는 반대의 감정이 숨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어서 말하는 이의 의도나 듣는 이의 이해가 뱉어진 말 그대로만은 전부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곳 서양에서는 무안할 정도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예의바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감추고 피하는 행동으로 의심을 살 수 있고 자신감이 없는 것으로 본다. 한 쪽에서의 예의가 다른 곳에서는 수상함으로, 이곳에서의 자신감이 저쪽에서는 과장함이나 뻔뻔함으로 비쳐지는 것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동서양이 다를까 새삼 놀란다. 허나 우리 선조들도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다’라고 하여 우리 몸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 것을 보아 눈은 사람의 마음을 닮아서 인간의 내면을 엿 볼 수 있다고 보았던 점은 동서양이 같다고 하겠다.

어찌되었든 자고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이곳에서는 눈을 쳐다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미국에 늦게 이민 온 필자의 지인 한 분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재미있다. “서양인의 눈 색깔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그 농도는 또 어떻고요. 주로 검은 빛 눈동자만 접하며 살다가 이곳에 와 다양한 눈 색깔을 접하니 마치 흑백영화만을 보다가 총천연색 스크린을 보는 듯하여 현란하고 게다가 옅은 눈빛이나 깊은 눈빛 그리고 빠져들 것 같은 묘한 빛깔 등에 매료되는 등 정신이 없는데 눈 맞추기에까지 신경쓰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상대가 무엇을 말하는 지를 잊을 정도였어요. 시간이 흘러 이제는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되었으니 세월의 덕분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닮아서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해서 어느 철학자는, ‘사람의 눈은 현재의 그를 말하고, 입은 그의 미래를 말하여 준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나 문제는 그러한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어떻게 보는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기 원하는 것만 보지 말고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 눈에 띄지 않는 것들까지도 보고, 겉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깊숙한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라고 하셨다. 그리곤 우리의 그 검은 눈동자를 통해서 세상을 ‘보시기에 좋았다’하고 싶으셨을 지도 모른다. 탈무드에, ‘눈동자가 검은 것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보기 위함이다’라고 한 걸 보면 우리의 삶이 어둡고 눈동자 같이 캄캄해도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어두움을 통해서 밝은 미래를 바라보라는 의미였을 것 같다. 그러자면 맑고 깨끗한 창밖의 시야를 위해서 마음을 좀 더 잘 닦아야 한다고 본다.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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