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승욱이 이야기

2008-06-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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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들 미국으로 오다

한국에서 드디어 촬영팀이 도착했다. 외주제작사 허 사장님과 방송 PD와 카메라 감독과 방송작가와 미국 현지 코디네이터를 맡아줄 효종씨까지 촬영팀이 전부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 서로 인사를 하고 언제나 사람들이 나에게 건네는 말, “어! 실물이 훨씬 미인이시네요…” 농담인줄 알면서도 들어도 들어도 언제나 기분 좋은 말, 실물이 훨씬 미인이라는 말이다.

첫 인상을 쭉 살펴보니 얼굴들이 범상치 않다. ‘흠, 저분은 성격이 꼼꼼할 것 같고, 저분은 재밌을 것 같고, 저분은 과연 일을 열심히 하실 수 있을까?’ 방송 PD님은 다큐전문이라고 했고, 카메라 감독 또한 한국에서 알아주는 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맡았던 프로그램에 대해서 나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데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 양 전혀 프로그램을 몰라주니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무안해 하는 얼굴이 한 눈에 보인다.


하여간 이력을 보니 다들 대단하신 분들이다. 저녁시간이 늦어서 바로 촬영에 대한 회의가 들어갔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으로 보내 드린 필름은 보셨나요?” “네, 대충 봤습니다.” “네? 대충이요? 시간이 별로 없으셨나 봐요.” “아니요, 보내주신 필름은 저희가 쓰는 필름과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전혀 못써요.” “네~에? 전혀 못 쓴다구요?” “아마 쓰게 되면 예전 자료화면식으로 대략 5분 정도 쓸 수 있을까 싶네요.”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허걱. 필름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어서 일을 시작한 건데 이걸 어째. 그럼 앞으로 2주간 꼬박 강행군이겠네.

다음날 아침이 토요일이니까 기숙사에 승욱이를 데리러 가는 것부터 촬영이 시작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촬영팀이 온 날 기숙사에서 연락이 오길 담당 디렉터가 휴가를 가기 때문에 일주일간은 기숙사 촬영이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몇 주 전부터 날짜를 잡아놓은 것인데 갑자기 촬영 불가라니 처음부터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다. 촬영을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촬영 불가란 자신들에겐 없는 말이라며 밀어붙이기를 시도하겠다고 한다. ‘밀어붙이기’ 그건 무슨 소리? 알고 봤더니 무대포로 밀고 들어가서 촬영을 하는 것이다. 어라?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미국인데 아직 저 분들이 이 곳 사정을 모르시네.

휴먼다큐는 주인공을 24시간 따라다니면서 촬영을 하기 때문에 어디든 따라 다니면서 찍어야 한다고 촬영팀이 말했다. 그래도 여기가 미국인 걸? 사전허락 없이 불가능일 텐데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나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이니 믿고 맡기자.

다음날부터 촬영이라 난 일찍 일어났다. “승욱이 어머니, 내일 아침 일찍 집으로 갈 게요. 집에서 준비하시는 것부터 찍으면서 따라갈 게요.” 주인공이 승욱이니 승욱이를 24시간 찍는다면 나 또한 거의 찍히는 것이다. 다음날 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집에 와서 누우니 촬영에 대한 부담감이 슬슬 밀려오기 시작이다. 게다가 아침 일찍부터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 밤새 잠을 설쳐서 눈은 토끼 눈에, 몸은 띵띵 부었고, 몸은 어찌나 무거운지 새벽 4시30분부터 일어나서 세수하고 화장하고 단장을 마치니 촬영팀이 들이닥친다. “어? 벌써 화장까지 다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어나시는 것부터 찍으려고 했는데.”

‘뭐야. 그럼 쌩얼부터 찍는다는 거야? 설마 24시간 집에서 상주하는 건 아니겠지? 촬영팀도 잠을 자야겠지. 자기들이 무슨 철인이라고 그리 강행군을 하겠어.’

다음날부터는 한국에서 온 철인들이 거실에서 장악을 하고 계신다. 순간포착이라고 한 컷도 다 살려서 찍어야하기에 24시간 대기중이다. 승욱이가 언제 어느 때에 좋은 내용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두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돌아갈 때가 많다. 아. 우리 철인들 잠도 없나보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숙소가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우리 집에서 머물고 있다. 집이 터질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철인들 앵글을 잘도 잡아 찍는다. 역시 프로이긴 프로인가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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