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5-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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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박자의 사랑

장애인의 날 특집방송을 하기로 한 ‘K’방송국에 내부 사정으로 방송이 취소되었는데 마음에 요동이 없다. 그저 미리 촬영 협조를 말씀드린 분들에게 죄송할 뿐이지 개인적으로 아쉽다거나 안타까움이 없다.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살다보니 안되는 일에 매달리는 것만큼 시간낭비, 에너지 소모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도 싫다. 마음엔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오겠지…라고 그냥 잊고 며칠을 지냈다.

저녁시간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허 감독님,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네, 승욱어머니~ 지금 SBS에서 연락을 받고 방송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셨나 봐요.” “네에?” “승욱이 이야기에 관한 기획안을 SBS에 보내 놓았었는데 오늘 급하게 연락이 와서 관계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어요. 더 좋은 프로에 나가게 된 것 같아요. 일단 미팅이 끝나면 전화를 다시 드릴께요”


뭐야, 이건 SBS라고? 흠, 몇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전화가 왔다. “기획안이 너무 좋다고 하네요. 곧 촬영에 들어갈 겁니다. 이쪽에서 피디, 카메라 감독, 작가 그리고 제가 함께 미국으로 갈 거에요. 준비 좀 해주세요.” 아… 맘을 접고 편하게 있다가 이게 웬일이람? 그날 밤부터 방송 작가와 이메일을 다시 주고받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협조가 필요하다. 그때 지난번 영상을 함께 찍었던 ‘미진’ 자매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 3년간 찍어 놓은 필름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얼추 60분짜리 40개를 확보하고 있으니 2주만 미국에서 찍으면 어느 정도 다큐가 완성될 것 같다.

‘미진’씨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2주간 촬영하는 동안 내가 다 따라 다닐 수도 없고,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이 길도 모르고 언어도 불편할 것 같다는 말을 하니 한 사람을 추천한다. 지난번 영상을 도와주었던 청년 ‘김효종’이란 친구를 연결시켜 주었다. 난 바로 한국으로 연락을 했고 어차피 현지에서 일을 도와줄 조연출을 찾고 있었는데 너무 잘 된 것 같다고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

‘효종’씨는 승욱이하고 몇 달동안 작업을 했기 때문에 승욱이 학교나, 기숙사나 사랑의 교실이나 내가 없어도 어느 곳이든지 척척 일을 해줄 수 있는 친구다. 대충 함께 일할 분들이 정해지고 일주일 후면 촬영팀이 미국으로 온다. 난 그 사이 방송작가가 섭외를 부탁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뽑고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SBS 스페셜 장애인의 날 특집 ‘네 박자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정해졌다. ‘네 박자의 사랑’…

승욱이 이야기에 익숙한 나에게 다소 생소한 타이틀이다. ‘네 박자의 사랑’의 숨겨진 뜻은?

(첫번째 박자는 주인공의 이야기. 아이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감각기관인 청력을 스스로 최대한 활용한다. 그래서 끊임 없이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덕분에 간단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다. 풀 향기, 바람소리, 흐르는 물 한 방울조차 아이는 모든 감각을 열어 느낀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그렇게 키워낸 사람, 엄마의 이야기가 두 번째 박자로 이어진다. 그녀는 아이를 위해 전사처럼 싸웠다. 그래서 때로는 뻔뻔하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LA 주정부로부터 아이를 위한 각종 서비스 혜택을 받아냈다. 그리고 뒤돌아서면 너무 힘에 겨워 통곡했다.


가족의 양보와 희생 또한 큰 역할을 해낸 세 번째 박자. 가족의 협조가 있었기에 주인공의 엄마는 아이를 위해 뛰어다닐 수 있었다.

마지막 박자는 특수 장애아 교사들. 주인공을 비롯해 장애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은 ‘21세기 설리반’이라고 불러도 아깝지 않을 사람들이다) 라고 작가가 방송기획안을 보내주었다.

짧은 시간 안에 ‘네 박자의 사랑’을 다 보여줄 수 있을까? 아… 조금씩 마음에 부담이 밀려온다. 승욱이가 잘해 줘야 할 텐데…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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