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5-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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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의

한국의 외주제작사 허동우 사장님은 일 년전 밀알선교단의 이영선 단장님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승욱이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 했고, 또한 한국에 알리고 싶어 했다. 외주제작사와 많은 이야기와 이멜을 오고갔고 방송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중에 형부가 돌아가셨다. 방송을 하는 것보다 가족을 돌보고 챙기는 일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한국에 전화를 걸었고, 방송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말씀드렸다. 언제든 여건이 되면 연락을 달라고 연락처를 받아 두었던 것을 거의 일년이 된 이제야 다시 꺼내들었다.

장애인의 날 특집 프로그램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고, 한국 외주제작사서는 방송국에 제작 기획서를 보내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밀알의 밤’을 위해 두 번의 영상작업을 해보았기에 얼마나 영상 찍는 일이 어려운지 안다. 거기다 집회용이 아닌 전국방송 특집으로 한 시간용을 찍어야 하니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영상작업을 해주었던 박미진 자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방송에 승욱이가 나가게 될 것 같다는 말을 하니 전화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 잘한 결정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들려왔다. “제가 말했잖아요. 승욱이가 방송을 해야 한다고요. 승욱이 자체가 어떤 연출도 어떤 조작도 없이 있는 그대로 찍을 수 있는 출연자이기 때문에 그 감동은 아주 클 거예요.” “잘한 결정 맞나요? 방송을 한다고 하고 좀 걱정이 돼서 미진씨에게 전화를 건 거예요.” “잘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두 번 영상 찍으면서 가지고 있는 승욱이 원본필름이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전부 드릴게요.” “그래요? 정말 큰 도움이 되겠어요. 이제야 좀 자신감이 붙었어요.”

방송 일을 진행시켜 놓고 난 가족회의를 열었다(물론 한국에 남편에게도 연락을 해놓은 상태다). 친정엄마와 언니와 아이들이 함께 앉아 내가 왜 방송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한국에도 장애우들이 장애를 극복해서 훌륭하게 성장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부모님들이 장애우를 키우면서 성공한 스토리도 좋아하지만 그렇게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난 안다. 나 역시도 승욱이를 낳았을 때 승욱이 같이 어린 장애우를 어떻게 키우는지 몰라 많이 우왕좌왕했고, 자료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승욱이를 키워온 과정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싶었고, 슬픈 스토리가 아닌 승욱이의 교육과정과 승욱이네의 진솔한 일상의 일부를 공개하고자 하는 나의 뜻을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아이들은 찬성한다고 만장일치다. 그런데 엄마와 언니는 살짝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염려를 우리 엄마와 언니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렇다. 지금 승욱이가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아직 다 성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굳이 방송을 하는 걸까?

한국에 있는 시청각 장애우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여건이 그대로인 한국 특수교육 분야에 중복장애아를 미국서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지 보여드리고 또한 여기까지 승욱이를 키우면서 그저 엄마 혼자의 힘으로 키운 것이 아닌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과 가족과 미국의 시스템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가족은 하루 동안 각자 생각한 후에 결정을 짓기로 했다. 왜냐하면 방송을 한다고 하면 승욱이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승욱이를 매일 따라 다니면서 찍어야 하기에 어쩔 수없이 우리 가족 모두가 노출이 되어야 한다. 가족 모두의 협조 없이는 난 할 수가 없다는 걸 안다. 왜냐하면 방송을 하는 것도 큰 부담감이지만 방송 후에 가족 중에 누구라도 상처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긴 하루가 지나고 다시 가족회의를 했다. 모두 만장일치다.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내 의도를 알기 때문이다. 긴 여정에 잠시 쉼표를 찍고 가려고 한다. 지난 9년간 열심히 앞을 보고 달려온 승욱이네가 승욱이의 일상을 살짝(?) 공개하기로 결정을 했다. 미국에 와서 받은 것이 많은 승욱이가 조금이나마 나눠줄 것이 난 분명히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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