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7년간 꿀벌이 되어버린 나

2008-05-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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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월이 되면 미국에 남편 따라 온지 꽉 찬 7년이 된다. 그 사이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보내어 준 비행기 티켓을 들고 향수병을 달래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었다.

공부하는 남편을 둔 언니를 위하여 늘 한 푼 두 푼 모아 일 년에 한 번은 비행기 티켓을 보내어 준 내 동생. 동생은 한국이 그리우면 가족이 그리우면 언제나 말만 하라 했지만 내 돈이 아닌 동생이 보내어 준 비행기 티켓으로 한국에 가는 나는 마음은 늘 하루에도 열두 번 가고픈 동생 집을, 아버지 어머니 집을 참았다, 참았다 그리움에 가득차고 설렘에 가득한 눈을 하고 딱 일 년에 한 번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일 년에 단 한번뿐인 이 모든 것은 다 동생 덕분이라며 생각하는 언니인 나는 늘 동생에게 무언가 보답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공부 중이니 티셔츠 하나도 제대로 사 본 적 없는 나는 늘 마음과는 다른 무게만 무거운 먹을거리로 한국으로 가는 내 가방을 가득 채웠었다.


사실 일 년에 한 번 가는 그 날을 생각하며 그 동안의 나는 일 년 내내 종종 발품 팔아 괜찮아 보이고 값 싼 물건들을 사와 작은 방 벽장 한 귀퉁이에 모았는데 그렇게 일 년을 모은 물건을 한국 가기 전 주에 가방 안에 채워보아도 겨우 가방 아래 깔리는 정도이니 한 숨이 매번 나왔었다. 한국으로 가는 가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살 때는 열 번도 더 생각하고, 지갑을 줄이고 줄여서 산 것인데도 쌓아 놓고 보면 너무 얇은 가방이 되니 보는 나는 늘 한 숨만 나왔다.

미국에 산다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임신한 동안에도 나는 칼국수 한 그릇 사 준 적이 없었고, 내 동생이 아기를 낳은 그 순간도 그저 수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동생 목소리에 미안한 마음 반, 축하하는 마음 반이었는데 결국에 벼르고 벼르던 이 한국행 가방마저도 나처럼 염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카를 위해서는 제일 좋은 장난감을 사고, 늘 나에게만 후한 동생에게는 옷이나 가방을 사고, 동생 얼굴 살려주고 싶은 마음에 착한 제부의 선물도 좋은 것으로 사고 싶고, 공부하는 남편 만나 고생만 해 보이는 딸을 걱정하는 부모에게도 번듯한 선물을 사가지고 가 오래간만에 남편의 기도 살리고 싶었는데 참 그것이 매번 내게는 그리 어려웠었다.
그러며 결국에는 가방을 채우러 내가 가는 곳은 대형 식품 매장.

못 사는 나라에 미제 음식이 귀한 나라에서 온 것도 아니면서 쿠폰을 챙기고, 평소 내가 맛 본 맛나던 과자들과 커다란 꿀 병들을 카트에 실어 나온다. 7달러면 살 수 있는 커다란 꿀 한 단지. 하나당 무게도 꽤 나가 벌써 몇 병만 실어도 가방의 무게는 초과되고 나의 한국으로 가는 변변찮은 선물 가방에는 가방 무게 때문에라는 핑계가 드디어 생긴다. 그래도 한국으로 가기 전에 늘 여쭈어본다. 늘 물어 본다. 무엇을 사다 줄까?

그러나 언젠가부터 부모님도 동생도 꿀이라고 말한다. 지난 7년 동안 딸에게 언니에게 가장 편한 선물이 꿀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 알아버린 것 같다. 언젠가부터 한국으로 가는 날의 가방은 꿀 단지 가방이다. 그래서 내 가족은 모두 꿀을 많이 먹나보다 하고 생각한 나는 지난 번 친정집의 찬장에서 내가 그 동안 나른 꿀들이 반상회 하듯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내 동생네에서는 부엌 뒤편에 몰래 숨겨 놓은 지난해 내가 사다준 꿀을 보았었다.

모두들 멸치 볶을 때도 꿀을 넣는다는 둥 불고기 젤 때도 꿀을 넣는다는 둥하며 꿀을 사달라고 했던 말이 나를 위한 거짓말이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며 마음이 찡해 왔었다.

나는 언제쯤 한국으로 꿀을 나르는 꿀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남편이 드디어 직장을 다니게 되었으니 내 가방이 조금은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꿀벌 자리를 내놓고 싶다. 꿀벌 사퇴!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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