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4-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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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책 (상)

하루가 얼마나 짧은지 모르겠다. 아침 6시에 눈 떠서 새벽 1시에 잠들 때까지 뭔가 끊임없이 하고 또 하는 일과의 연속이다. 내 생활 사는 것이 너무 바빠 점점 남에게 신경 써주는 것에 소홀해진다. 가까이 지내는 장애우 가족들에게 연락도 못하고 지낸다. 뭐가 이리 바쁜 걸까.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는데 반가운 이메일이 한통 들어왔다. 예지엄마다. 예지엄마를 안 것이 일 년쯤 되어가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예지도 승욱이 같이 시청각 장애우다.

전에 승욱이가 다니던 학교에 한국 엄마가 한국에 있는 예지엄마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알게 되었다. 승욱이와 같은 장애가 있으니 멀리 떨어져 살지만 더 관심이 가는 가정이다. 이메일에는 아주 좋은 소식이 있었다. 한국에서 예지엄마와 몇 가정이 모여 중복장애협회를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미국에 시청각 장애 관련된 곳의 연락처와 정보를 알고 싶다고 이메일이 온 것이다.


알고 있는 사이트와 담당자들의 연락처를 모아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 한 가지 조언을 부탁하는 예지엄마에게 장애우 가정 몇 가정이 모여서 협회를 만들 때 장애 전문가들과 관련 변호사나 의사나 교육자들이 함께 조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내는 중에 갑자기 한국에 유명 대학 교수님 한 분의 이름이 떠올랐다.

3년 전에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교수님을 추천했다. 이메일을 보낸 후 바로 예지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한국에 특수교육학과 이 교수님을 어떻게 아냐는 거였다. 우연히 TV에서 승욱이 같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그 교수님이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너무 인상적이어서 기억이 남았다고 했다. 그때 예지엄마가 3년 전에 TV에 나간 것이 예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갑자기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는 느낌… 몇백 톤급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하니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기억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일 밤 늦은 시간 한국 TV를 시청하고 있는 엄마가 나를 부른다.

“민아야~~ 이리 와서 이 프로그램 좀 봐라. 승욱이 하고 똑같은 장애우가 TV에 나왔다. 빨리 와 봐.” 난 승욱이가 태어난 후 장애우가 나오는 TV를 보는 것이 제일 마음 아프다. 우리 집에서도 겪는 아픔을 또 보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웬만하면 TV를 보지 않는다. 승욱이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일단 TV 앞에 앉았다.

9세짜리 시청각 장애 여자아이가 거의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보고 그리고 전문가들을 연계해주는 과정에서 누구도 중복장애 아이를 전문적으로 맡아 교육시켜 줄 수 없는 한국 교육실정을 보고 가슴이 무거웠다(물론 중복장애는 미국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을 거의 끝자락부터 보았기 때문에 무엇이 어떻게 된 사연인지를 정확히 파악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유명대학 특수교육학과 교수님이 그 여자아이를 맡아 교육시키겠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이 끝이 났다.

프로그램이 끝났는데 마음이 마구 둥둥거린다. ‘니가 도와줘. 연락을 해봐.’ 난 일단 이 교수님이 계신 곳에 이메일을 보냈다. 승욱이 엄마인 것을 소개하고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너무 고맙다는 답장이 바로 이메일로 왔다. 아이를 어찌 가르쳐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을 글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난 승욱이 교육 자료를 일단 추려서 복사를 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자료를 다 보내드릴 수가 없어서 처음 도입 부분에 해당하는 자료를 정리했다. 그리고 며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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