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로벌화 속 인종갈등 ‘오만과 편견’을 짚다

2008-04-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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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 속 인종갈등 ‘오만과 편견’을 짚다

한인 이민사와 인종에 관한 연구 보고서 ‘제국의 시민들’(스탠포드 대학 출판사 펴냄)의 발간을 앞둔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 나디아 김 교수.

글로벌화 속 인종갈등 ‘오만과 편견’을 짚다

학술서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딱딱한 책인데, 나디아 김 교수의 책 표지는 한국 전래동화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난다. 어머니 김선자(LA에버그린 라이온스클럽 회장)씨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이다.

LA폭동 16주년이 다가온다. 미주 한인 이민역사에서 뼈아픈 고통과 교훈을 남겨준 4.29 폭동. 그 폭동을 지켜봤던 고등학생이 어느덧 대학교수가 되어 한인 이민사와 인종 관련서적을 펴냈다. 오는 6월 스탠포드 대학 출판사가 발행하는 나디아 김 저 ‘제국의 시민들’(Imperial Citizens: Koreans and Race from Seoul to LA)이다. ‘서울부터 LA까지 한국인들과 인종’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이민자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학술서이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 LA폭동을 겪으면서 인종간의 갈등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가 10년 가까이 산고를 겪어서 세상에 내놓는 책이다.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저자 나디아 김(34) 교수를 만났다.

한인 이민사 ‘제국의 시민들’펴낸 나디아 김 교수

고교 졸업할 무렵 폭동 겪으며 인종간 갈등에 관심
박사논문 위한 리서치로 시작 한·미 오가며 글로벌 연구
이민자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한 학술서로 완성시켜


“1945년 미군이 들어오면서 한국은 미국이란 나라, 미국인이란 사람을 알게 됐어요. 당시 미국은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강대국이었고 미군은 한국을 도와주러 온 자유의 수호자였습니다. 당시 미군들 중에는 흑인이 많았어요. 미국이 미국식 인종주의를 갖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죠. 한국뿐 아니라 오키나와, 필리핀 등 미군의 도움을 받은 국가와 도시는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겁니다.”

김 교수가 붙인 책 제목 ‘제국의 시민들’은 단지 일본과 미국의 지배를 받았던 한국인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직도 받아오는 국가들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저자가 한인 2세이기에 서울에 사는 한국인과 미주에 사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기술적 인종학적 접근을 했다.

인종적 관점에 맞춘 한인 이민사, 그것도 한인 여성 이민사에 관한 고찰이 담겨 있는 그녀의 책은 원래 미시간 주립대 앤아버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박사논문을 위한 리서치로 시작했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한국인 32명을, 미국으로 건너온 초기이민자 25명, 이제 갓 이민 온 신이민자 25명,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 20명을 인터뷰하면서 글로벌 연구로 발전했다.

이민자의 자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태어나 미국을 살면서 인종주의와 인종편견, 인종차별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그녀였기에 한인 이민사 연구에 대한 애착이 그 무엇보다 강했던 것이다.

2003년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사회학 교수 및 대학원생들과 논문에 관해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내용을 보완, 한 권의 책이 완성됐다.

아시안 관련 서적 출판사로는 최고의 명성을 지닌 스탠포드 대학 출판사가 발간을 결정하면서 서울과 LA를 오가며 기울였던 각고의 노력이 빛을 보게 됐다.


이민사를 다룬 논문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UC샌타바바라 대학 2학년이었으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14년이 소요된 셈이다.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인종차별은 미군과 언론의 보도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에서 9장과10장은 여성 이민사를 다루고 있어요. 한국전 직후 한국 여성은 미군과 결혼해 잘 사는 나라로 이주하고 싶어 했죠. 서구적인 외모를 좋아해 성형수술을 하는 것도 여기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순된 시각도 있었어요. 미국에서 군인은 교육을 받지 못한 하류인생 그룹이었기에 미군을 경시하는 마음도 동시에 지니게 된 거죠.”

2000년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해 한국의 이화 어학당에 등록했다. 6개월 동안 한국인들이 미국인을 보는 시각을 꾸준히 관찰했고, 연구조교이자 이화여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대학생, 젊은 직장인, 중년층을 만났다.

틈이 날 때마다 탑골공원을 찾아 노년층과 대화를 나눴고, 주말이면 삼일교회에 출석해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또,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신문을 통해 미국을 보는 시각에 대한 자료 수집을 했고, 미국이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눈여겨보았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초기이민자와 신이민자 50명과 2세대 20명을 인터뷰하며 미주 한인들이 지니고 있는 인종에 관한 의식조사를 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그녀의 연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백인-동양인-흑인이라는 계층적 순서로 배치된 인종 차별에 관한 인식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들의 눈에 여전히 흑인은 정치적 힘도 없고 범죄나 저지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민자로 살아가는 한인들이 대우를 받는 사회도 아니었죠. 점차 한인들은 백인 아래, 흑인 위의 중간 계급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LA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가 12학년이었죠.”

벤추라카운티의 오크팍 고교를 다닐 때부터 전교회장을 지낸 총명하고 의식 있는 학생이었던 그녀는 로드니 킹 사건이 한·흑 갈등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에 집착하게 됐다. 분명 폭동은 ‘로드니 킹 사건’이라는 흑인과 백인 간의 인종차별이 원인이었는데 정작 분노한 흑인들에게 공격을 당한 사람들은 한인이었다. 게다가 한·흑 갈등으로 빚어진 폭동으로 여론몰이가 되면서 흑인과 백인이 바라보는 한인, 더 나아가 동양인에 대한 시각이 알고 싶었고, 역으로 한국인이 흑인과 백인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도 알고 싶었다고 한다.

“LA폭동으로 인해 미국 이민자들이 생각을 바꾸었다고 봅니다. 점점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거죠. 사회학적으로 부정적인 관계는 변화의 가능성을 낳거든요. 다음 프로젝트는 아시안과 라티노 이민자에 관한 연구와 한인 2세대의 성, 인종, 관계, 차별에 관한 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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