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8-04-05 (토)
크게 작게
승욱이 이야기

“거기 김민아씨 댁이죠? 여기 한국인데 저 민아친굽니다.” 새벽 한시, 잠결에 받은 전화기 저편에 낯익은 목소리의 남자를 난 단번에 알아들었다. “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 “민아지? 민아 맞지? 아, 난 미국사람이 전화 받으면 어쩌나 걱정했잖아.” “반갑다 친구야. 근데 전화번호는…” “야! 김 민아, 내가 너 전화 번호 알아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전화번호 아는 자식들이 어찌나 유세를 떨던지. 나 밥값 많이 나갔어.” 내 전화번호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친구들이 그리 비밀에 부쳤는지. 쩝…

친구를 고 2때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되어가는 사이다. 6명의 친구가 너무 친했는데 지금은 각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아빠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승욱이 때문에 갑자기 미국으로 온 후 사실 한국에 있는 몇몇 친구만 연락을 하고 지냈었다.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니 자연히 내가 왜 미국에서 사는지 친구들에게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나보다. 친구 H의 전화에 잊고 지냈던 많은 친구들의 소식도 듣게 되었다.


오래 전 학창시절 비밀로 간직했던 수수께끼도 풀리고 아, 내가 그랬었구나, 아, 내가 그런 아이였지. 새삼 나를 알게 해준 친구. 그러고 보니 난 처음부터 아줌마가 아니었고 좋은 추억 가득한 학창시절도 있었다는 걸 알았다. 결혼해서 12년이 되어가니 아줌마 정신이 완전히 뿌리 깊이 박혀서 애들 키우는 일이 전부인양 살고 있는 나에게 여러 가지를 일깨워주는 친구다. “김민아, 너 아직도 거짓말할 때 콧구멍 벌렁거리니? 아직도 얼굴은 하얗고? 깔끔한 단발머리 고수하고 있지? 웃을 때 아직도 입 크게 벌리고 웃지?” “치. 안 그래. 좀 변했어. 어른이 되면 좀 변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너는? 너는 뭐 많이 변했냐?”

한 교회에서 다들 자랐으니 부모님들도 다 알고 가끔 학생으로 하면 안 되는 짓거리(?)도 하긴 했지만 우리 언제나 우정이 우선순위였다. 친구 6명이 가끔 오해도 있었고, 삐지기도 하고, 떡볶이 값이 모자라서 싸우기도 하고. 의리 빼면 시체라고 서로를 조직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자애들이 군대를 가면 서로 면회를 가주고, 학교 축제 때는 여자친구인양 대신 축제도 가주고, 제일먼저 취직한 친구 직장에 무작정 찾아가고. 너무 재밌는 기억들이 가득하다.

친구 6명 중에 제일 건강했고, 늠름했던 친구가 너무 젊은 나이에 먼저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 친구의 장례식에 오랜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의 이름이 거론되었나 보다. 그래서 친구 H는 나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 나를 궁금해 하는 사람. 어떤 글에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너무나 다행인 것은 우리가 그때 나쁜 맘으로 만난 것도 아니었고 순수했기에 지금도 하하하. 호호호. 이름도 편하게 부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며 친구들에게 기억에 남는 친구로 살길 바란다.

나도 한국에 있었으면 오랜 친구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처음 우리가 만났던 그 나이로 돌아가 행복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난 이렇게 내 자리를 지키며 승혁이, 승욱이 엄마로 살아가련다. 그저 나를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채로 입가에 웃음 한 모금 물고.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