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가 최복림씨의 아마존 여행기<2>

2008-03-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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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복림씨의 아마존 여행기<2>

독일인 가이드로부터 아마존의 식물세계에 대해 설명을 듣는 일행들. 아마존 밀림 속에는 온갖 종류의 약초들이 자라고 있다.

작가 최복림씨의 아마존 여행기<2>

아마존 여행지의 목조건물. 집들은 강의 수면이 올라올 경우에 대비해 모두 높게 지어져 있다.

급류·폭포·소용돌이 심해 루즈벨트 ‘의문의 강’ 지칭

아마존은 신비의 강이다. 유래부터가 그렇다. 아마존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활을 잘 쏘는 여성 전사들이다. 신화에 따르면 북해(Black Sea) 지방에 전쟁을 잘 하는 용감한 여성들이 살았고, 이들은 활을 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한쪽 유방을 잘라냈다고 한다. 지금부터 약 500년 전, 최초의 유럽인들이 아마존을 찾았다. 탐험가들은 브라질 동쪽 대서양에 먼저 닻을 내렸다. 살바돌, 리오데 자네이로항에 들어와 조심스럽게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밀림 속에서 큰 강을 발견했다. 넓고, 길게 뻗어있는 강줄기는 탐험대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유일한 ‘하이웨이’였다.

스팀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화살이 날아왔다. 자세히 보니 강 저쪽에서 머리가 치렁치렁한 사람들이 활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체였다. 중요한 부분만 살짝 가렸을 뿐이었다. 탐험가들은 “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 아미존이로구나” 생각했다. 아마존 탐험이 이어지면서 후세 사람들은 그러나 초기 탐험가들이 이들을 여자로 본 것은 착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머리를 길게 내려 여자로 보였을지 모르나 사실은 남자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인디언 여자들은 전쟁터에 나서지 않는다. 여인들은 화전을 가꾸어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밖에 나가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며 집을 짓는 것은 남자들이 할 일이다.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은 남자 전사들의 몫이지 여성들이 할 일이 아니다. 종족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디언들에게 어머니가 싸우다 죽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인디언들이 아마존에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만3,000년 전이었다. 인디언들이란 어떤 사람인가? 얼굴 모습을 보면 우리와 같은 몽고족이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몇 차례의 빙하기가 있었을 때 시베리아에서 얼음다리를 타고 알라스카로 들어왔다. 얼음 두께는 2마일, 동토의 넓이는 1,000마일이나 되었다고 한다. 알라스카로 넘어온 사람들은 미대륙을 거쳐 수 천년에 걸쳐 조금씩 남하하기 시작했다. 멕시코를 거쳐 파나마 랜드브릿지를 넘어 안데스산맥 고원지대에 도착했다. 페루를 중심으로 한 잉카문명이 형성되었다. 이들 중 일부가 아마존 밀림 속으로 스며들어 생활의 터전을 잡았다. 한때 아마존의 인디언 인구는 500만명, 180개의 언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생존해 있는 아마존의 인디언 인구는 약 25만명,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학살당하고, 노예로 잡혀 일하다 죽고, 병들어 죽었다. 많은 인디언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명세계로 흡수되기도 했다.
수백년 전 백인들이 처음으로 아마존에 들어왔을 때 원주민들은 그들이 기다리던 신이 오신 것으로 믿었다. 인디언들은 키가 크고 잘 생긴 백인들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백인들은 신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하고 자원을 빼앗아 갔다.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말라리아와 황열병, 천연두, 장질부사와 같이 돌림병이 번져 번역성이 없는 원주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거칠은 뱃사람들은 인디언 여인들을 마구 짓밟아 성병이 나돌았다. 백인들에 대한 인디언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브라질 정부는 현재 법으로 외부인들과 인디언들의 접촉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인디언 보호정책이다. 정부는 밀림 속에 Funai 라는 기구를 설립해 놓고 인디언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외부인들과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마존강의 유역은 강이 자주 범람하는 지역과 홍수에서 어느 정도 안전한 지역, 밀림 깊숙한 고산지대로 분류되는데 인디언들은 중간지대에 살고 있다. 고산지대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나무가 우거져 있고 맹수들이 살고 있어 인간이 들어가 자리잡을 수 없다.
아마존을 탐험한 저명한 미국인으로 26대 대통령을 역임한 데오도르 루즈벨트를 빼놓을 수 없다. 테디 루즈벨트는 프랭클린 루즈벨트(FDR)과 인척간이다. FDR의 부인의 삼촌이 바로 테디 루즈벨트이다. 테디 루즈벨트는 사냥을 좋아하는 도전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7년간의 재임기간 중 파나마운하를 건설하고 대기업과 이익단체의 저항을 물리치고 사회보장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그는 둘째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에 다녀왔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02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고 그 후 밀워키에서 저격당해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롱아일랜드 Oyster Bay의 저택에서 말을 타다 넘어져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왜 아마존에 들어가 죽을 고비를 맞았을까? 모험을 좋아하고 영웅심이 강한 테디 루즈벨트(TR)는 1914년 대원 20여명을 이끌고 아마존강의 한 지류의 탐험길에 오른다. 아마존 지역을 수 차례에 걸쳐 답사한 브라질 사람 죤디도 론던을 현지 사령관으로 했다. TR 일행이 탐험한 강은 당시 이름이 없었다. 인디언들의 공격이 심하고 급류와 폭포, 강의 소용돌이가 심해 사람들은 이 강을 ‘의문의 강(River of Doubt)’이라고 불렀다. 루즈벨트 일행은 4개월의 탐험기간 중 여러번 죽을 고비에 직면했다.
대원 3명이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루즈벨트 자신도 말라리아에 걸려 열이 105도까지 올라가고, 타고 가던 카누가 좌초되어 강물에 들어가 도와주다가 이미 다친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피가 흐르는 다리의 상처를 뚫고 박테리아가 침범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카누 안에서 마취도 없이 대원으로 동행한 현지 의사로부터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일행은 식량이 떨어지고 부상자가 속출해 더 이상 탐험을 계속하기 힘들어졌다. 루즈벨트는 이 때 한쪽 다리를 잃은 불편한 몸으로 “나는 이미 훌륭한 삶을 살았다. 남미에 묻혀도 후회 없다”며 대원들을 격려해 탐험을 성공시켰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지금 무모하게 아마존에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존은 외부세계에 개방되었고 연간 5만여명이 정글을 찾고 있다. 아마존 여행의 가장 쉬운 방법은 마나우스에서 두 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서 정글투어를 하는 것이다.
육지에 도달하자마자 일행은 가볍게 동요했다. 현지인 어린 아이들이 몸에 큰 뱀을 감고 나타났다. 뱀을 무척 싫어하는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악어를 잡아 들고있는 아이들, 원숭이와 앵무새를 들고있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찍게 하고 돈을 받고 있었다. 얼마나 슬픈 모습인가. 나는 전율을 느꼈다. 동행한 유럽 관광객들은 아이들이 동물을 학대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아마존 투어의 다음 단계는 마나우스에서 배를 타고 벨렘이라는 포구로 가는 것과 강 상류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아직 제대로 여행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배의 흔들리는 해먹에서 자거나 고깃배에 묻어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리아우라는 통나무로 만든 타워에 들려 숙박하면서 일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에 조인했다. 독일 병정을 연상시키는 크리스터퍼라는 독일인이 영어투어를 담당했다. 그는 우리를 정글로 데리고 가 갖가지 식물을 보여주었고 캄캄한 밤중에 카누를 타고 나가 악어 사냥을 데리고 나갔다. 우리는 두 번 원주민 마을을 방문했다. 처음 간 집은 애가 15이나 되었다. 모두 한 어머니에게 태어났다고 한다. 위의 큰 아이 3명은 마나우스에 나가고 2명은 투어회사에서 카누를 운행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어려서부터 고기 잡고, 밭을 가꾸는 일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가 두번째 방문한 빌리지에는 8세대, 35명이 살고 있었다. 마을에는 전기가 없고 밤에만 발전기를 돌려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마을에는 작은 학교가 있는데 교사 1명이 유치원에서부터 16세 고등학교 과정까지 가르치고 있다. 교사는 아침에 카누를 타고 인근 마을에서 학생들을 데려다가 공부시킨 다음 퇴근하면서 귀가시키고 있다.
혼자서 4명의 핸디캡을 포함해 20여명을 가르쳐야 하는 학교, 교재도 변변치 않고 교사는 3~4개월 동안 제대로 월급도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허물어져 가는 목조 가옥에서 여행자에게 손을 흔드는 원주민 아이들의 애처로운 모습. 우리는 원주민 가게에서 그들이 직접 만든 기념품을 구입했다.

차 례
<1> Welcome to Manaus
<2> 의문의 강
<3> 아마존을 지키자
<4> 브라질은 정글사회?
<5> 여자 옷은 우리에게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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