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장실 없는 호화궁전

2008-03-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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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왕조 멸망 초래한 베르사유궁

루이 14세가 50년에 걸쳐 건축, 길이 680미터에 왕과 귀족 5000명 거주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에서 전철을 타고 40분 정도 걸리는 교외에 위치해 있다. 관광객들이 몰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줄서서 기다려야 하며 구경하고 나면 반나절이 지나간다. 패스를 가진 사람은 옆문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파리에서 뮤지엄 패스를 미리 사 가지고 오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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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정문. 관광객이 너무나 몰려 아침이나 오후 4시 이후에 가는 것이 좋다.

베르사유 궁전은 길이가 680미터나 되는 웅장한 건축물이다. 베르사유궁에는 왕뿐만 아니라 귀족과 하인들도 살았기 때문에 건물 내 거주인이 5,000명 정도였다. 그런데 화장실이 없었다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국민성을 고려하면 너무나 프랑스적이 아니다. 지금은 궁전 입구에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을 하나 지어 놓기는 했지만 건물 내에는 여전히 없기 때문에 베르사유궁을 관광하려면 화장실부터 미리 다녀와야 한다.
왜 화장실이 없었을까. 베르사유궁을 건축한 루이 14세(사진)는 아름다운 궁전에 냄새 나는 화장실은 만들 수가 없다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왕은 대소변을 어떻게 해결했나. 하인이 변기를 들고 따라 다녔으며 왕이 일을 보고 나면 냄새가 번지지 않도록 그 자리에 꽃을 뿌렸다고 한다. 파티에 참석한 귀족이나 귀부인들은 모두 정원에 나가 일을 보았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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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뒤 정원쪽에서 본 베르사유 건물. 길이 680미터나 되는 궁전 안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베르사유궁은 부르봉가의 위엄과 절대왕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루이 14세가 50년에 걸쳐 지은 건물이다. 원래 왕궁은 파리 시내에 있었다. 지금의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왕궁이었다. 그런데 민심이 뒤숭숭하고 소요까지 일어나 어린 시절 루이 14세가 교외로 피신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파리에 정이 떨어진 데다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권위를 보이려면 왕궁이 위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엄청난 공사를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공사에서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귀족들의 사치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베르사유가 부르봉 왕조의 패망을 불러오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태양의 왕’으로 불리는 루이 14세는 매우 키가 작아 항상 하이힐을 신었고 대머리가 되어 늘 가발을 착용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오히려 루이 14세의 흉내를 내 하이힐과 가발이 유럽에 유행하게 되었다. 그는 5세에 즉위하여 1715년 숨을 거둘 때까지 72년 동안이나 프랑스를 다스렸으나 인기가 없어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슬퍼하기는커녕 “마침내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느님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힌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토를 넓히는 전쟁과 베르사유의 사치에 나라의 재정이 너무 기울어 결국 손자 세대에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불씨를 심은 셈이다. 먹을 것이 얼마나 없었던지 기아자가 많아 당시의 국민 평균수명이 25세였으며 거리마다 걸인이 우글거렸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는데 루이 16세의 잘려진 머리를 높이 들자 군중들이 환호하는 현장 그림이 파리의 카나발레 뮤지엄에 걸려 있다. 루이 14세는 춤을 좋아하고 예술을 장려해 몰리에르, 라퐁텐, 코르네유, 라신 등 뛰어난 문예인들이 이 시대에 배출되었다. 말년에 루이 14세는 자신의 치적이 잘못된 것을 뉘우쳐 검소하려고 애썼으며 임종 때는 루이 15세를 불러 “전쟁하지 말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어라. 이 점에서는 나를 따르지 말아라”는 유언을 남겼다. 루이 14세는 “절대 권력은 절대 망한다”는 진리를 역사에서 보여준 프랑스 왕이기도 하다.

이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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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궁에서 가장 화려한 방으로 꼽히는 ‘거울의 홀’. 연회는 이곳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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