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타 인터뷰-대니얼 데이-루이스

2008-02-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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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남우 주연상
“극중 인물 씻어내기 애먹어”

영화 ‘피가 있을 것이다’로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서 남우주연상을 탄 아일랜드 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51)와의 인터뷰가 지난해 11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남우주연상 외에 촬영상도 받은 ‘피가 있을 것이다’(There Will Be Blood-현재 상영 중)는 20세기 초 중가주 석유 밭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 반사회적 인간의 권력과 부에 대한 집념을 그린 어둡고 폭력적인 드라마다. 반 팔 셔츠에 모자를 쓰고 귀고리와 금팔찌의 히피 차림을 한 데이-루이스는 영화 속 냉혹하고 강렬한 인상과는 달리 상냥했다. 질문에 종종 눈을 감고 심사숙고를 한 뒤 답하는 성의를 보였다.

연기는 ‘무’에서 시작, 환상 만들어가는 자신과의 놀이


-어떻게 이 역을 얻게 되었는가.
▲폴 토마스 앤더슨(감독)의 각본을 읽고 너무나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폴은 작가로서 자기가 창조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 역은 그가 내게 준 선물이다.
-당신은 과작의 배우로 은둔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나는 은둔자의 내면을 갖고 있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단순히 조용한 삶을 산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긍정적인 일이다. 무언가를 단호히 하고 싶을 때면 일을 한다. 나는 늘 이런 두 삶을 살아왔다.
-배우로서 또 개인으로서 당신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인가.
▲일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광부들이 보상을 찾기 위해 일하듯 나는 일을 할 때면 열병에 들린 듯이 한다.
-영화 속 주인공 대니얼은 환경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천성적인 인간 혐오자인가. 역을 위해 연구를 했는가.
▲그는 사람들로부터 자기를 분리시킴으로써 자기 파괴를 스스로 하는 자로 그의 내면에 이런 증오의 씨가 있다고 본다. 당시 금과 석유로 노다지를 취하려던 사람들은 동물처럼 살았다. 따라서 인간성이 감소된 사람들이다. 준비로서는 당시 광부들의 편지를 많이 읽었다.
-당신은 맡은 역을 하나의 모험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실제 생활은 어떤가.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가.
▲결코 없다. 나는 아일랜드 위클로우힐스에 사는데 자연 경치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노라면 몇 달이 금방 지나가는 것도 못 느낀다.
-하루의 촬영이 끝나면 당신은 영화 속 인물을 몸에서 떨어내곤 하는가. 촬영이 끝나고 극중 인물과 완전히 결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촬영이 모두 끝나고 작중 인물과 완전히 결별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엄청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 역이 내겐 기쁨이었다. 그래서 난 하루 일과 뒤에도 작중 인물과 헤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내 기쁨이었다. 내 삶에 자양분 있는 기간이 되었던 그 무엇과 헤어진다는 것은 다소 슬픈 일이다.
-모터 사이클링을 여전히 즐기는가.
▲그렇다. 난 2대의 모터바이크를 갖고 있다. 20대 중반에 얻은 취미로 결혼하기 전만해도 내 교통수단은 모터바이크였다. 작년에는 가주 몬트레이에서 열린 경주에 참가했다. 그러나 가족을 가진 이젠 모터바이크는 장난감이 돼 버렸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매일 같이 초점을 한 군데에만 집중해야만 하는 일이어서 영화가 미래에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든다든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저 사람들이 보고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족하다.
-50세가 된 느낌은.
▲그런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젊었을 때보다 좀 더 책임감이 있다고나 할까. 그저 난 매일 같이 새 것들을 발견한다.
-아직도 목공일을 하는가. 구두를 제조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낭설이다. 내가 플로렌스에서 구두를 만들었다는 것은 낭설이다. 구두를 제조한다면 플로렌스는 옳은 장소가 아니다.
-글을 쓰고 일기를 쓰는가.
▲일기는 안 쓴다. 과거에 글을 좀 썼는데 앞으로도 쓸지 모른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로 생각지는 않지만 글쓰기를 즐긴다.
-세 아들이 당신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그들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풍요롭게 만든다.
-당신은 맡는 역마다 강렬하게 표현해 내는데 그것을 일관성이라 불러도 되겠는가. 당신은 메소드 배우인가.
▲내가 맡은 역을 모두 강렬히 묘사한다고 느끼는 것은 극중 인물은 달라도 그 역을 표현하는 내가 늘 같기 때문이다. 매번 역을 맡을 때마다 난 무에서 시작한다. 연기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당신이 아기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이다. 나는 메소드 연기를 가르치는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학교에서 수련을 받아 메소드 배우라 부를 수 있다.
-영화 처음에 당신이 은광 속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장면을 맨 처음에 찍었는가.
▲그 장면만은 가주와 멕시코 국경지대 폐광에서 찍고 나머지는 모두 텍사스의 마르파에 세운 세트에서 찍었다. 전체를 한 장소에서 찍었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촬영할 수 있었다.
-극중 대니얼은 살인을 서슴지 않고 하는데 사람이 살인자로 변하는 시점이 어느 때인가.
▲그걸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때로 살인의도를 갖게 마련으로 우리는 그것을 억제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 당신의 음색이 낮고 울리는데 이 역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것인가.
▲매번 새 역은 일종의 자신과의 놀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내 역에 생명을 주고 성격이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선 그에 맞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우리는 목소리로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1930년대에 녹음한 목소리들을 들었다. 그러나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역에 충실하려고 촬영시간 외에도 배역의 목소리를 유지했다.
-당신은 조용한 사람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난 일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깊이의 침묵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세트에서도 쉴 때면 조용한 장소를 찾아가곤 한다.
-영화에서 당신은 온 몸이 기름투성이로 더럽고 지저분한데 어떤 물질들을 몸에 뒤집어썼는가.
▲물감을 섞은 기름을 몸에 뿌렸는데 기름이 텍사스의 뜨거운 태양 때문에 몸에 달라붙어 마치 갑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샤워는 가끔 밖에 할 수 없었다.
-당신은 맡은 역과 완전히 동화하는 배우인데 영화 촬영이 끝나고 얼마 후에야 역에서 독립할 수 있었는가.
▲촬영이 지난해 8월 말에 끝나고 가을 내내 극중 인물과 살아야 했다. 그러나 배역과 이별한다는 것은 엑소시즘처럼 극적인 것은 아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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