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웰빙이야기-배 죽으로 기침이 멎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2007-12-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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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벗긴 배를 사등분하여 속과 끝 부문을 잘라내고 얇게 저며서 냄비에 담는다.
불을 올려 냄비가 뜨거워진 다음 타지 않도록 약한 불에 두어 시간 푹 익힌 다음, 자기 전에 반,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를 먹이니 몸통까지 울리던 딸의 기침이 가라앉았다.
딸이 집에 있는 동안 며칠 더 배 죽을 먹이려 한다.
앞으로 또 기침이 나면 목과 몸 또 발을 따뜻하게 하고, 목안이 부드럽도록 기름 몇 방울을 섞은 당근 주수를 가지고 다니며 낮에 자주 홀짝이라고 당부하려고 한다.
아이들이 집에 오고 친척집들을 오가는 이번 크리스마스 휴일에 내가 가장 기쁘고 신났던 일은 배 죽으로 딸의 기침을 가라앉힌 것이다.
컹컹대던 기침소리 대신 깔깔대는 딸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퍽 행복하다.
가난하고 불쌍하지만 사소한 일에 의미를 찾고 기쁨을 느끼며 가슴 뿌듯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천상병 시인의 ‘행복’을 소개한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김준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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