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식 이야기-셰프 가족의 악몽

2007-12-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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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주부를 둔 우리 가족이야기다.
생선은 입에도 못 대는 사람에게 투나 맛을 보게 한다. 메뉴 개발을 한다며, 그래서 맛을 보고 미국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맛보기를 강권한다. 그리고 셰프 부인이 만든 질문이 가득한 질문지조차 작성해야 한다. 한국식 맛이 가미된 멋스런 오브되브르 메뉴를 선택해야 하기에 미국인 입맛의 남편의 의견은 아주 중요하다.
소스 개발을 할 때는 보통 한 소스를 3~4갤런은 하루에 쉽게 만들고 같은 소스를 이리저리 기본 재료의 양을 바꿔가면서 만들고 또 만든다. 그리고 테스트는 계속된다. 냉장고의 선반은 테스트를 거친 소스로 가득하다. 그리고 보통 3~4개월 동안 테스트를 하게 된다. 성공할 때까지 남은 모든 소스는 우리 가족의 애피타이저 코스에 배당 될 수밖에 없게 된다(버릴 수는 없으므로).
6개월 동안 파인애플 비네그렛을 계속 먹고, 그 다음에는 소이-발사믹 드레싱을 3개월 동안 샐러드에 뿌려서 먹는 도중, 아직도 1병이 남아 있는데, 이제는 도저히 못 먹겠단다. 아무리 부인을 사랑해도 같은 소스를 계속 3~6개월 동안 먹는 것은 너무 심한 처사라며 남편이 하소연한다. 그에게 평생소원이 있는데 트레이더 조 마켓에 가서 기본적인 발사믹 소스를 사서 샐러드에 섞어서 먹어보는 게 그의 소원이란다.
이 정도의 소스 고문기는 아주 귀여운 이야기이다. 정말 셰프 가족 악몽기의 절정은 갈비 바비큐라고 할 수 있다.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한국식 바비큐 레스토랑의 메뉴 개발은 본인에게는 너무나 의욕에 넘치게 하는 재미난 프로젝트였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 매일매일 온 집안에 갈비소스 냄새가 6~7개월 동안 계속되며 기름이 마블처럼 끼워져 있는 갈비 바비큐 테스트를 매일매일 먹어야 한다. 나의 온몸은 갈비소스 냄새에 절여진다. 지나가던 개들도 나를 보면 코를 킁킁 거릴 정도니까.
처음 2개월은 소스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맨 입에 양치도 하기 전에 테스트하기를 강요하곤 했다. 그리고 아침식사로 갈비 또는 불고기가 서브된다. 아니 갈비 또는 불고기만 서브된다. 이 매일매일은 계속되었다. 이야기를 회상하는 나조차도 속이 갑자기 느끼해지는 기분인데, 나의 가족들은 어떠했을까…
참고로 말하자면 나의 남편은 80% 채식, 20%의 닭고기 요리를 가장 이상적인 식단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6개월 동안의 갈비구이, 불고기구이는 수난을 거쳐, 고난이 되고 결국은 고문에 이르게 된다. 마침내 레스토랑 메뉴 개발이 막을 내렸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나의 고객이 아니라 나의 가족들이었다.
나는 우리 가족의 특별한 저녁 메뉴를 생각해 낸다. 쓰고 남은 재료들이 아닌, 그리고 테스트하다 남은 소스가 아닌 저녁 특별메뉴는 스팀으로 익힌 두부와 현미밥 그리고 트레이더 조에서 사온 신선한 발사믹 드레싱으로 무친 샐러드로 가족들을 기쁘게 해 줄 생각이다.
(310)400-2137
www.bedelicious.biz
정은정
<요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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