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주영 - 민정부부 60일간의 미 대륙 횡단기 3

2007-11-23 (금)
크게 작게
안경 깨지고
휠체어 펑크
‘가혹한 하루’


세번째 목적지 : 미니애폴리스


차에서 못내려 경찰 에스코트 받아 수리
천국 ‘스탠 하이왯 가든’ 둘러보며 위안



사우스다코타의 커스터에서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까지는 너무 먼 거리라 수 폴(Sioux Falls)이라는 도시에 하룻밤 지내고 다음날 들어갔다.
호수가 많기로 유명한 미네소타주는 무려 1만여개의 호수가 있다고 한다. 미네소타주에 들어서기 전부터 들판은 옥수수 밭으로 꽉 차 있었고 보이는 시골마다 잘 정돈된 마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니애폴리스 도시는 미네소타주에서 인구가 39만명 정도로 제일 많고 옆에 붙어있는 수도인 세인트폴과 트윈시티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메트로폴리탄을 이루고 있다. 도착한 첫날은 피곤하여 일찍 쉬고 다음날 아침 두 가지의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는 미니애폴리스 조각공원이라는 곳으로 여러 가지 예술 조형물들을 설치해 두고 도시인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원을 만들어놓은 곳인데 눈에 띄는 첫 번째 것은 스푼의 크기가 무려 52피트가 되고 거기에 매달린 체리의 무게가 자그마치 7,000파운드나 되는 작품(Spoonbridge and Cherry)이었다. 이밖에도 공원에는 눈여겨볼 만한 조형물들이 많았다.
조각공원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 다음 한 블럭 건너편에 자리 잡은 워커 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에 갔다.
이곳에 대해 뉴스위크와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은 “미국 최고의 현대미술관, 오랫동안 보고 또 보고 생각할 가치가 있는 곳, 가장 생동감 넘치는 뮤지엄 중 하나”라고 평했으리만큼 풍성한 평가를 받고 있는 문화공간이다. 미니애폴리스에는 타겟(Target)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 이 도시의 커다란 자랑이며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었다.

네번째 목적지: 낭만의 도시 시카고

미니애폴리스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까지 가는 데는 여러 길이 있지만 우리는 한적한 시골길을 즐길 수 있는 위스콘신주를 통과하는 길을 택했다. 참으로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을 즐길 수 있는 위스콘신주는 프리웨이 휴게실마저도 이게 공원인지 화장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시카고. 일단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해서 역시 대도시임을 느꼈다. 시카고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링컨 팍 동물원에 갔다. 1868년 개장한 이곳은 뉴욕의 센트럴 팍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무료공원이다. 시카고에서 가장 큰 공원이자 휴식공간으로 공원 한 가운데 있는 호수에서 페달을 밟으며 여유롭게 떠다니는 배(paddle-boating pond)가 있었다.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이 공원에서만 무려 200여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는 손목이 아파서 좋은 곳에서도 찍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다음에 간 네이비 피어(Navy Pier)는 입장료는 없지만 주차비가 19달러나 되었다. 왜 이리 비쌀까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시카고 다운타운의 위용이 다 보이면서 파란 바다와 등대 그리고 요트까지… 벤치에 앉아서 따사로운 햇살을 벗 삼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샌타모니카를 즐기던 나의 취미가 되살아나서 한참을 향수에 젖었다.
마지막 여정지인 시어즈 스카이덱(Sears Skydeck)으로 갔다. 주차부터 난리다. 몇 곳을 헤매고 다니다 겨우 입장했다. 대낮에 내려다보는 시카고의 모습은 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아내와 서로 바라보면서 이곳까지 왔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다섯번째 목적지: 아콘, 오하이오

시카고를 떠나 오하이오주의 아콘으로 가는 길. 오늘은 종일 안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다. 넘어져서 안경이 부러져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비상용 안경을 안 가져 왔더라면 그야말로 어쩔 뻔 했는가. 아침부터 이런 일이 생겨서 비상용 안경을 쓰다가 선글라스를 쓰다가 하면서 운전하여 반 쯤 왔나… 휴게실에서 잠시 쉬면서 산보를 하는데 휠체어 바퀴가 펑크나 버렸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차에는 올라탈 수 있었지만 휠체어 바퀴는 주유소에서 바람 넣는 것으로 해 봐도 도저히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예약돼 있는 아콘으로 안 갈 수 없어서 운전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일단 호텔까지 와서 종업원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자전거 리페어샵을 물으니 잘 모르겠단다. 차에서 내릴 수는 없고 시간은 자꾸 흐르고… 참으로 막막했다. 체크인도 못하고 일단은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에 주차하고 스피드건을 쏘고 있는 경찰차로 갔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세상에! 자기를 따라오라며 자전거 리페어샵까지 앞장서 가줬다. 세상에 태어나서 경찰차 에스코트를 받으며 자전거 리페어샵을 가 보기는 처음이다.
잠시 후 내 휠체어는 멀쩡하게 고쳐져서 나왔고, 난 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60일간 여행을 하다보면 별일 다 생기겠지만 그래도 휠체어에 펑크 나는 것은 나에게 너무 큰 고통인데… 다른 어려움은 쉽게 이겨낼 수 있지만 차에서 내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나에게 너무 큰 시련이다. 오늘은 안경이 깨지고 휠체어가 펑크 나고 너무나 가혹한 하루였다. 내일은 아무 것도 안 하고 호텔에서 쉬어야겠다. 아내도 너무나 놀랐을 텐데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꼬.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8시15분이다. 이렇게 늦게까지 자보기는 여행에서 처음이다. 아내도 항상 6시 이전에 일어나 준비했었는데 오늘은 나보다도 더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어제 일이 너무 힘들었나보다. 이날은 오랜만에 밀렸던 빨래를 하고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든든히 먹은 후 스탠 하이왯 가든(Stan Hywet Hall and Garden)에 갔다. 입장료만 일인당 13달러인데 참으로 잘해 놓아서 세상엔 이런 천국도 있구나 싶었다. 가든을 다 돌며 구경하려면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아서 두어 시간 머문 다음 숙소로 향했다.
아콘(Akron)이라는 도시는 인구가 20여만명 정도 되는 아담한 도시로 근처에 2000년도에 생긴 쿠야호가 밸리(Cuyahoga Valley) 국립공원이 있다. 클리블랜드와 아콘 사이의 쿠야호가 강을 따라서 만든 이곳은 오하이오주에 하나밖에 없는 국립공원이다. 사실은 이곳을 제대로 보려고 아콘에 온 것인데 어제의 충격으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여행 스케줄 중에서 처음으로 보지 못하고 떠나는 황당함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휠체어 때문에 놀란 가슴을 추스를 수 있었고 또한 덕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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