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순신불사” 언급후 복귀설
경선후 李후보와 만남 연기 강연 행보
10월엔 李후보와 오찬서 대북관 우려
2002년 12월 두 번째 대선 도전 실패 후 정계를 은퇴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결국 자신의 발언을 삼키며 대권 삼수(三修)를 선택했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본격 고민한 것은 최근이지만 ‘이회창 출마설’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꾸준히 떠돌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총재는 의미심장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경희대 특강에서 그는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ㆍ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은 죽지 않았다)라고 했다. ‘순신불사’의 어귀를 떠올릴 때마다 전율 같은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때 정치권에서는 반신반의 속에 ‘창(昌)의 정계 복귀’를 점치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올해 첫날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이 전 총재가 “현실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 복귀설은 일단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현실 정치에 대한 언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의 대북 정책기조를 무조건 바꾸겠다는 것은 정체성을 포기하고 국민을 배신하는 것”(3월16일), “이렇게 지독한 경선은 처음 봤다”(8월1일)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8월말부터 미묘한 기류가 이 전 총재 쪽에서 감지됐다. 이명박 후보가 경선 승리 후 8월 28일 이 전 총재를 찾아 인사를 하려했으나 이 전 총재가 급체를 이유로 만남을 연기한 것이다. 이 때 당 안팎에서는 “이 전 총재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돌았다.
이 전 총재는 또 지난달 8일 이 후보와의 오찬에서도 이 후보의 당내 화합 의지와 대북ㆍ안보관에 대해 우려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출마설이 살을 붙여나갔다. “이 후보가 네거티브를 견디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보수층의 대안후보로 나선다”는 이른바 ‘스페어 후보론’이라는 명분까지 거론됐다. 이 후보는 이후 외부 강연 등 사실상의 정치 행보를 계속하며 보수 색채를 강화했다.
출마설이 구체화되면서 사실상의 경선 불복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지난달 29일부터 자택에서 칩거에 돌입했고, 2일부터 지방으로 내려가 5일간의 장고 끝에 결국 국민 앞에 다시 서기로 했다. ‘이회창 출마설’은 소문이 아니라 현실이 됐고, 17대 대선은 불과 한 달 전에도 예상치 못한 ‘이회창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昌 출마 반대” 한나라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6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서울 서빙고동 자택 앞에서 이 전 총재의 대선출마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