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삼성그룹은 옛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로비 관련 ‘회장 지시사항’ 문건 등 삼성의 부정.비리 의혹을 일부 언론을 통해 폭로하고 있는 데 대해 4일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한 채 사실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삼성은 김 변호사가 주장한 ▲ 임원 명의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 2002년 대선 자금이 이건희 회장 개인돈이 아니라 회사 비자금이라는 의혹 ▲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배정과 관련한 증인조작 ▲ 로비 관련 문건 등에 대해 터무없다며 김 변호사가 5일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 일방적 주장, 안타깝다 = 삼성은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틀린 내용을 확대 왜곡하고 있다고 일축하면서도 김 변호사의 폭로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폭로한 ‘회장 지시사항’ 문건에 대해 그런 문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회장의 지시사항은 아니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문건이 이 회장의 발언을 정리한 것은 사실이나 이 발언들은 회사 경영을 위해 참고하거나 검토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이 회장이 실행을 지시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이 회장의 평소 발언을 녹취했다가 검토한 뒤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관행이며 이 회장의 발언 중에는 실무 차원에서 검토된 뒤 현실과 맞지 않을 때는 이행되지 않는 것도 있다.
다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한 로비에 대해 이 회장이 세부사항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드러난 데 대해서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삼성의 다른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대선자금, 에버랜드 사건 증언 조작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물증없이 전직 법무팀장을 지냈다는 것만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지만 전직 법무팀장의 발언이라는 사실만으로 파장이 확대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 편법 승계 등 ‘뇌관’ 건드리나 = 김 변호사 폭로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주목거리다.
김 변호사는 2002년 삼성이 정치권에 건넨 대선자금은 이 회장의 개인돈이 아니라 회사돈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2004년 이학수 당시 삼성 구조조정본부장(현 전략기획실장)이 370억원을 불법 대선자금으로 한나라당과 구 민주당에 제공한 것을 사법처리하면서 이 돈이 회사에서 조성된 비자금이 아니라 이 회장 개인돈이라는 삼성측의 주장을 받아들였었다.
김 변호사의 폭로가 단순 구두 주장에 그치지 않고 관련 자료 등 증거를 수반할 경우 현 대선 정국과 맞물려 가늠할 수 없는 폭발력을 가질 전망이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배정 사건과 관련해 증인과 증언이 조작됐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도 삼성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의 한 고리에 해당하는 에버랜드가 발행한 CB를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헐값에 배정함으로써 이 전무에게 그룹 지배권을 확보해준 이 사건은 1, 2심에서 삼성이 유죄판결을 받은 뒤 현재 대법원에 최종심이 계류중이다.
김 변호사는 이학수 실장이 편법증여를 주도했으나 허태학 당시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현 에버랜드 사장이 대신 혐의를 받도록 시나리오를 짜고 증언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측은 김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이번 폭로가 이 사건과 관련한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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