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 책상에서 일어나면

2007-10-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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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책상에 앉지 않고 지낸다. 지난 두 해 동안 나는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여러 작업을 하느라 식사 준비나 아이 일로 바쁘지 않는 이상 책상과 함께 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던 내가 작은 사고와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책상을 마주하지 않게 되자 작은 여러 가지 변화가 내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고, 음식 메뉴 또한 다양해졌다. 그리고 해가 지면 즐기는 산책으로 인하여 늘어진 건강도 되찾은 기분이 든다. 이십대부터 밤을 자주 새던 나에게는 밤이 낮보다 더욱 친숙하고 편했었다.
더욱이 한 살 때 미국에 온 내 아이와 나는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 아이도 나도 이 캘리포니아의 한 낮의 태양은 너무 눈부시다는 이유로 낮에는 꼼짝 않고 있다가 해가 지면 여기저기서 나오는 너구리가족과 함께 우리는 기숙사 학교 안을 걸어 다녔었다. 그렇게 지내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며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생활하는데 익숙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여러 가지 일들로 아이가 잠 든 후부터 책상에 앉아 일을 하게 되니 완전히 밤을 새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손가락을 다치고, 부족한 마음의 여유로 책상에 앉지 않게 되자 처음엔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사람 일을 모두 설명키 어려우니 먼저 불안함을 내맡기고 찾게 된 이 시간들의 여러 가지 즐거움을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감사함이 내가 해야 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방해하고 있지만 나는 오늘도 저녁 산책을 하며 한 숨을 돌린다. 책상 앞에서 세상을 보기 바빴던 그 시간보다 요즘 나는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우리 옆집 할머니 오모니께가 사다 내 놓은 노란 국화도 보고, 다른 옆집 할아버지 에릭이 키우게 된 꼬리가 길고, 주둥이가 긴 흰 색 강아지도 보았다. 그리고 아침 환기시키며 창을 열 때마다 에릭 할아버지가 강아지와 산책하시는 모습을 창 너머로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우리 집 아침이 좀 시끄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그 때 청소차가 와 쓰레기를 실어 나르느라 아주 큰 소리를 내고, 길가에 있는 우리 집 덕분에 아침부터 활발히 다니기 시작한 차들이 “나, 달립니다” 하며 지나다니는 소리도 나는 듣게 되었다. 이렇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전에는 나는 우리 집이 매우 조용한 줄 알았다. 매일매일 밤을 새고 아이 학교를 보내고 그제야 쓰러져 곤한 잠을 잠시 잤으니 말이다.
전화가 온다. 시아버지께서 물으신다. 요즘은 무엇을 하고 지내느냐고.
나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요. 그냥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려 해요” 라고 그러나 나는 분명 책상에 앉아 일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 또 다른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또 다른 나를 기다린다.
세상 살아가며 갖게 된 하고픈 말들이 너무 많을 때 말을 하려말고, 해를 보고, 아침에 창을 열고, 밤에 잠을 청하고, 먹고픈 것을 먹으며 가족과 지내는 일이 책상에 앉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는 것을 요즘의 나는 알게 되었다. 책상에서 일어나고 걸어보자. 해를 보고, 별을 보고, 나무를 보면 할 말 많은 내게 그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냥 이대로 걸어보렴. 그냥 햇볕을 쪼이렴. 그냥.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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