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추석 즈음에

2007-09-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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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을 통해 어떤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재미사업가 박병준 회장이 한국의 KAIST에 1,000만달러를 기부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50여년 전 미국 MIT공대 유학 시절, 주린 배를 움켜쥐며 공부하면서 장차 돈을 벌면 힘들게 공부하는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겠다던 다짐을 이행하는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 사진 속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현재 한국의 건국대학교 대학원장으로 평생을 교육 일선에서 열정을 다하고 있는 오성삼 교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월드비전을 통해 알게 된 오 교수님은 50여년 전 월드비전 후원 아동이었습니다. 몸을 의탁했던 동두천의 한 고아원이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을 받던 시설이라, 자연스럽게 결연 아동이 되어 외국인 후원자가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되면 배고픔은 면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학비가 없어 막막할 때, 월드비전의 피어스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무작정 떠난 미국 유학 시절, 갖은 고생을 하며 거의 공부를 마쳐갈 무렵, 도저히 마지막 학기 수업료를 감당할 수가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시 미국 월드비전의 회장이었던 무니햄 박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월드비전 수혜 아동으로 큰 꿈을 품고 미국에 공부하러 왔으나 도저히 마지막 학기 수업료를 마련할 수가 없습니다. 월드비전에서 도와주신다면 언젠가는 꼭 7배로 갚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 본 무니햄 박사 사모님이 생활비를 쪼개 학비를 보내주었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40여년이 지난 1996년, 오 교수님이 월드비전의 문을 열고 들어 오셨습니다. 눈가에 물기를 가득 담고 담담히 40여년 전 이야기를 말씀하시던 오 교수님은 이제야 당시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노라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유학시절 받았던 도움의 7배 이상의 후원금을 주머니에서 꺼내 놓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도움 받았던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그 분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그 분을 잊고 살았었는데 박 회장님의 기사를 읽으며 오 교수님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지난 4월 오픈한 그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자신의 약력을 올리면서 학력란 옆에 ‘월드비전 장학금 수혜’라고 당당히 밝히고 계시더군요.
추석입니다.
미국에서 삶이 익숙해질수록 한국의 명절을 여느 하루와 매한가지 일상으로 간주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저절로 쓴웃음이 나옵니다. 그러나 추수의 계절에 없는 것도 쪼개어 나누던 우리 민족의 따뜻함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오늘 하루만큼은 누군가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추석의 풍요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박 준 서 / (월드비전 코리아 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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