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9-2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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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과 신앙

요새는 어찌된 영문인지 안경을 쓰는 어린 아이들이 참 많다. 삶의 질이 향상돼 키도 점점 커지고,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시력만은 점점 나빠지는 경향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TV가 원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 ‘눈’은 쉬지 않고 ‘조절’ 작용과 ‘굴절’ 작용의 고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데 들어가면 좀더 빛이 많이 들어오게끔 눈동자가 커지고, 밝은 곳으로 나오면 빛이 적게 들어오도록 눈동자가 작아지는 기능이 바로 ‘조절 작용’이다. 이 눈이 순간 명암이 바뀌는 TV화면에 따라 그에 맞춰 조절을 하다보니 안구 근육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겠다. 또한 들어오는 빛과 영상을 망막에 제대로 포커스가 맞도록 순간 거리를 맞추는 역할이 ‘굴절 작용’이다.
이런 눈이 순식간에 볼록 렌즈가 됐다 오목 렌즈가 됐다 하면서, 수시로 바뀌는 TV화면에 따라 숨가쁘게 혹사당해야 하니 어린 아이들 눈이라고 온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상은 비단 신체적인 눈동자에만 국한되어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영적인 ‘마음’의 눈에도 해당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날부터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고 해온 모양이다.
요즘은 신문, 잡지, TV, 인터넷 등 온갖 매스컴과 언론매체를 통해 들어오는 오염된 영상들로 ‘마음의 눈’마저 들어오는 것을 숨가쁘게 선택·삭제·조절하다 보니, 너무나 지친 나머지 기능이 점점 둔화돼 가는 듯한 증상들이 나타난다. 눈만 뜨면 눈으로 들어오는 죄악과 범죄의 홍수로 옳고 그름을 뚜렷이 분간하기 힘든 ‘마음’의 난시와 근시, 사시가 되어 가는 세상이기에 말이다.
일례로 요즘 연일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청와대 전 정책실장과 허위 위조 박사로 대학교수까지 된 젊은 여인간의 스캔들은 조절 기능을 잃어버린 인간 세태를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이 세상에 ‘안경’이 있다는 사실이다. 눈에 맞는 안경을 쓰면 신기하게도 온 세상이 즉시 환하게 밝아진다. 모든 것이 환해지면서 모든 사물의 모습이 갑자기 또렷하게 드러나 보인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우리 마음의 눈에도 그래서 안경이 필요하다. 병든 유전자인 원죄 때문에 선악의 분별이 흐려지고, 그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뒤죽박죽이 된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인간 삶의 ‘안경’이다. 그 분을 ‘통하여’ 볼 때만이 흐릿하던 하느님의 모습과 그분의 사랑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겁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의 죄악과 잘못을 분명히 볼 수 있게 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세상 것’ 밖에 못 보던 근시안적 마음의 눈이 뜨여 영원한 천상영복을 볼 수 있게 된다.
눈의 안경처럼 마음의 안경도 잘 닦아주며 살아야 계속 잘 보인다. 매일 드리는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서를 보는 것이 바로 마음의 안경을 자주 닦는 일이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자신과 이웃의 삶을 ‘진선미’의 삶으로 이끌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에 우리 삶에 ‘신앙’이 필요한 것 아닐까?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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