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2007-09-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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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자의 종교

한국 기독교는 세상을 향해 정의를 외쳤었고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돕고 위로했다는 자랑스러운 과거를 가졌다.
한국 초기 교회의 아름다운 사회 참여가 불꽃이 되어 폭발한 것이 1919년 3·1독립운동이었다. 그후 1920년대에도 기독교는 계몽운동, 민족운동, 교육운동, 구제사업의 최선봉에 서면서 식민지 백성을 위로하며 민족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한국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의 압박 밑에 있을 때에도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민주화운동과 빈민운동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대변하고, 핍박받는 자, 고통 당하는 자 편에 선 기독교의 모습을 온 몸으로 증언하였다.
그러나 한국에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 한국 기독교의 정치, 사회 참여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띄게 된 것 같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정치적인 발언권을 잃어버린 극우 집단의 대변인이자 대중동원 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극우파 정치운동에 적극적인 교회 지도자들 대부분은 독재 정권 밑에서는 정교분리의 원칙 때문에 침묵을 지킨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폭력 살인 정권의 손을 들어주고 그 대가를 챙겼다. 그들이 요즈음에는 시청 앞에 많은 성도들을 모아놓고 인공기 태우기, 김정일 화형식 등 지극히 비기독교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화해가 아닌 증오를 들추기는 것 같아 반공주의적인 보수 크리스천인 나의 눈에도 이것은 아닌데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요즈음 이 분들이 아주 살 판이 났다. 한 대형 교회 장로님이 다음 번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보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 장로 후보자를 도우려는 기독교의 움직임이 이곳 저곳에서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간통과 횡령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는 어느 대형교회의 목사가 전 교인들에게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금식기도를 부탁했다. 또 남가주 교회 협의회장을 지낸 모 목사는 아예 그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에 갔다. 남가주에서 서울 강남의 대형 교회로 ‘영전’해 간 어떤 목사는 뉴욕의 집회에 와서 한국에 보수세력이 정권을 탈환해야 한다고 외치며 그것을 위해 투표권 있는 한인이 한국에 나오면 자기교회 수양관에서 공짜로 재워준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나의 눈에는 모두 한국 교회가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안간힘이며 미래의 권력 앞에 줄서기 경쟁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비추어 진다. 한국의 기독교는 집권자의 종교의 자리를 되찾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회사는 기독교가 기득권의 종교, 집권자의 종교가 되었을 때 늘 부패했고 그래서 생명력을 잃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인 신사참배, 1960년 3·15부정선거의 지지,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지지 등은 모두 한국 교회가 정치권력에 굴종, 결탁 혹은 아부해서 생긴 일들이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가 오늘날 이처럼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가 기득권의 종교가 되어서 큰 교회는 그 엄청난 자원을 요리하느라고 뒤뚱거리고 작은 교회들은 큰 교회처럼 되려고 비성경적, 비도덕적인 일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통탄할 사실이다. 제발 미국에 있는 한인 목사님들만이라도 권력 앞에서 초연해지기를 바란다.

박 문 규 (캘리포니아 인터내쇼날 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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