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 차를 다리며 마음을 다리며

2007-09-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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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10대 웰빙 식품 중의 하나로 선정됐고, 우리도 즐겨 마시는 음료가 녹차나 홍차 등 여러 가지 차입니다.
차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많습니다. 하지만 불가에서는 중국의 달마(470-?)대사와 관련된 유명한 전설이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샤카무니 붓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 대사는, 오랫동안 ‘타이’라는 산으로 들어가 참선수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참선 수행자들에게 가장 큰 장애는 수마, 즉 쏟아지는 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방의 수행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수마가 짓누르는 눈꺼풀이라고 말합니다.
오로지 하얀 벽만을 바라보며 9년을 용맹 정진하던 달마 대사에게도 시시때때로 어김없이 수마는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사는 자신의 눈썹을 하나씩 뽑아 법당 마당으로 던지며 잠을 쫓았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 던져진 눈썹들이 차나무로 자라났고, 그것들이 차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나무의 이름은 처음에는 대사가 주석했던 산 이름인 ‘타이’로 불려졌고, 후세 영국인들은 그 ‘타이’를 ‘티’로 발음했습니다. 중국과 기타 동양권에서는 ‘타이’가 ‘차’ 또는 ‘다’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가 지닌 여러 특성과 효능 중에서도, 특히 각성의 효과가 뛰어남을 꼽습니다. 그래서 불교계, 특히 선가에서는 선 수행의 한 부분으로 차를 마시는 전통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선가에서는 차 마시는 일을 두고 ‘깨달음을 마신다’고까지 말합니다.
물론 선 수행에 차가 활용된 까닭은 머리를 맑게 하고, 잠을 쫓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차가 지닌 고결한 가치인 투명한 맑음과 소박하고 단아한 꾸밈없는 속성이, 번뇌와 망상 등으로 오염된 마음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선사상과 융합하여, 다도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그러한 차와 선의 사상적 융합을, 차와 선의 맛은 하나요, 둘이 아니라는 ‘다선일미’ 또는 ‘다선일여’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차는 수행자들에게 필수적인 구도의 방편이 됩니다.
한편, 도를 묻는 제자에게 ‘차나 한잔 드시게’라고 한 조주선사(중국 당나라 778-897)의 가르침은, 차와 선의 밀접한 관련성을 잘 보여줍니다.
여기서 차는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는 방편이 됩니다. 도는 멀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고정된 관념을 타파하고 온갖 망상을 떠나 차를 마시듯, 일상의 평상심에 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근세 최고의 선승이며 차의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의순 초의선사(조선말 1786-1866)를 통해, 우리는 선과 차의 경계와 높은 격조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손수 만든 차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최고의 학자와 예술가들과의 격조 높은 소통과, 교분의 인연을 오랫동안 맺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사께서는 차는 맑으며, 헛된 것을 멀리하는 성현들의 기질과도 같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사의 차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해남 일지암의 오두막에서 직접 차를 키우고 다리며, 고고한 학처럼 유유자적하신 선사께서는 다선삼매, 그 마음을 다려낸 탈속의 법열을 이렇게 노래하셨습니다.
“눈을 가리는 꽃가지를 꺾으니, 저녁노을에 아름다운 산들이 저리도 많았던가.”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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