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09-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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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히 행하는 선교

20여년 전, 월드비전 아프리카 사업장에서 발생했던 일입니다. 영국인 후원자가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그 아이가 거주하는 한 고아원을 찾았습니다. 아이를 만난다는 설렘에 가방마다 캔디며 과자며, 초컬릿 등을 꽉 채워 간 후원자가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때 거기에서 그 아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던 이 후원자는 월드비전 직원이 아이를 만나기 전에 주었던 방문자 원칙을 무시하고는 직원 몰래 가져 온 캔디, 과자, 초컬릿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맛있는 음식에 흥분한 아이들 수백명이 순식간에 한데 몰리면서, 몇몇 어린아이들과 후원자까지도 넘어져 깔리면서 심각한 상해를 입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던 후원자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상황에서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매정한 사람이라고 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심각한 불상사만 일어났습니다. 또한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맛있는 사탕을 먹은 아이들이 몰랐던 맛을 알게 된 후 갖게 될 욕망은 누가 책임질까요?
성경 말씀 중 미가서에는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영문으로 보면 그 뜻이 더욱 확연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t justly, Love mercy, Walk humbly with your God.”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일을 ‘겸손하게 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말이나 태도가 공손한 것? 부드러운 표정으로 다가가는 것? 아닙니다. ‘겸손히 행하는 것’은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필요한 것을 그들의 시각으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함에 있어서 나의 존재를 제거하지 않으면 결코 겸손해질 수 없습니다. 43일간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떨었던 우리의 형제, 자매 21명이 돌아왔습니다. 기쁨과 감격도 잠깐인 채, 엄청난 비난의 뭇매 속에서 더 큰 고통의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항상 부르짖는 같은 민족이지 않습니까?
모든 일에는 성장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사춘기 시절 갑자기 키가 자라는 아이들에게 성장통은 필수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은 분명 성장통입니다. 돌아온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누군가 겪어야 했던 일을 겪게 된 희생자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비난, 또는 그 비난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아닙니다. 겨우 10년 미만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해외 선교, 해외 봉사활동이 성숙해지기 위해 현재의 성장통을 어떻게 잘 다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겸손히 행함에 있습니다. 현재까지 우리는 해외 선교든, 봉사든 모든 출발을 ‘나’에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만족하면 그들도 만족하겠지! 나 외에 누가 이런 훌륭한 일을 하겠어? 내가 하는 일이 최고의 방법이야? 내가 이런 일을 했거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멉니다. 그것이 생명구호이든, 영혼구원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먼저 ‘나’를 버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겸손히 행하는 ‘겸손 연습’이 우선 되지 않으면 이번의 엄청난 비난을 만회할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지 모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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