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친 영혼 적시는‘한줄기 빛’

2007-09-1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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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방문한‘영성시인’ 류해욱 신부

『오늘 저 때문에/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없게 해 주십시오/
저의 탐욕 때문에/주리는 사람이 없게 해 주십시오/
제가 함께 있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외로운 사람이 없게 해 주십시오./
저를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해 주십시오.』
<류해욱 신부의 ‘햇살처럼 비껴오시는 당신’>

‘때로는 감미로운 목소리의 연가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예언자의 기침소리가 담긴 잠언 같기도 하고, 때로는 달빛과 묵향이 가득한 구도자의 일기 같기도 한 마음을 적시는 영성시.’<시인 이해인 수녀>
‘희귀병 환자이면서 의사인 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쓴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원제 The Kitchen Table Wisdom)를 번역한 그는 영혼의 든든한 후원자로 유방암으로 투병하던 내가 복귀 의지를 갖게 했다.’<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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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해욱 신부가 9일 성아그네스성당에서 ‘선교의 영성’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다. <진천규 기자>>

위의 평가는 예수회 소속 류해욱(52) 신부를 두고 한 말이다.
류 신부는 시는 물론 그림과 사진에도 조예가 깊다. 자신이 직접 찍은 자연의 신비롭고 아늑한 풍광들에다 묵상의 글을 덧붙인 사진집을 펴내기도 했다. 영혼이 지친 사람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마련해 영성 회복을 돕고 있다.
류 신부가 8, 9일 성아그네스성당 한인회관에서 ‘복음묵상 안내’와 ‘선교의 영성’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류 신부는 1991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애틀랜타 한인 천주교회에서 사목했다. 예수회 신부는 다른 사제들과는 달리 성당에서 신자들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주로 공부를 하면서 신자들과 수도자들의 영성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류 신부도 영성이 깊다.
류 신부가 미국에서 수녀들을 상대로 피정 지도를 할 때 일이다. 자신의 시를 몇 편 나누어주었는데, 양로원과 병원 등 소외된 지역에서 봉사하느라 피로에 지친 수녀들의 얼굴이 여고생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류 신부는 1995년 ‘영성생활’이라는 매체에 첫 시를 발표하기 전부터 예수회 안에서 이미 시인으로 통했다. 자신의 시가 정서적으로 깊게 다가가 영성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지었다.
예수회는 사제가 되기 위해 10년의 세월이 필요할 만큼 엄격하게 수련을 시키는 곳이다. 수련과 사제생활을 합쳐 20여년간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 온 류 신부는 사제에 걸맞은 ‘봉헌된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들 때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특별히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평화를 얻었을 때 ‘십자가의 길’에 대한 행복을 느꼈다고 말한다. 보스턴 근교의 외진 곳에 사는 환자가 류 신부의 책을 보고 간절히 그를 만나고 싶어했을 때, 눈보라를 뚫고 달려가 죽어가는 이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자 지극한 평화 속에서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류 신부는 주위의 모든 것에 예민하게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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