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9-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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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우리 주변에는 스스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게도 가장 대하기 힘든 경우가, 자기 나름의 생각에 집착해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그렇다고 괴로워하며 사는 그들을 방치만 하고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다. 도와주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도와준다고 무작정 설득시키려 들면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 수도 있다. 부단히 인내하는 마음으로 ‘환자편’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내 방식이 아니라 그들 방식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언젠가 월간지 ‘광야’에 이런 글이 실렸다.
『입을 벌리고 낮잠을 자다가 파리 두 마리가 자기 뱃속으로 들어와 계속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 그의 잘못된 상상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지만 오히려 그에게 반감을 살뿐이었다.
이 딱한 사람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당신 말이 맞소! 분명히 당신 뱃속에 파리가 날아다니고 있소. 그 파리를 내가 잡아서 빼내 줄 것이니 눈가리개를 하고 잠깐 동안 낮잠을 자시오”라고 말했다. 그런 뒤 그 사람은 재빨리 방에 날아다니는 파리 두 마리를 잡아 조그만 병에 넣고 나서 환자를 깨웠다.
“이봐요! 이놈들이 당신 뱃속에서 나온 파리요”라고 하자 눈을 뜨고 일어난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더 이상 헛상상으로 괴로워하지 않게 됐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와줄 때도 우습고 이상한 논리를 펴는 사람에게는 그 논리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도와준다면서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방식만을 가지고 무작정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덤빌 때가 있기에 말이다.
사람은 얼굴이 다르듯 각자 생각이나 논리가 다를 수 있다. 그 때문에 많은 경우 상대방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도움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생각은 사고의 ‘틀’이다. 이 사고의 틀이 고정되면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틀이 네모꼴로 고정되면 더 이상 세모꼴이나 둥그런 원형은 담기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사고의 틀이 고정되면 다른 생각은 받아들이기 힘들어 자기 생각밖에는 더 이상 생각할 줄을 모른다. 자연 다른 사람과의 대인관계도 어려워질 때가 생기고 스스로도 많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해답은 하나다. 사고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물 안에 갇혀있던 개구리가 뛰쳐나와 푸른 하늘과 넓은 세상을 경험하듯, 생각과 사고가 넓어져야 한다. 세상에 장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다른 종류의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답게 세상을 장식하고 있음을 봐야 한다.
이 세상 안에는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생명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그들의 생각도 제 각기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과 생각들이 어울리는 이 ‘다양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임을 깨달을 때야 비로소 행복이 꽃피는 것 아닐까.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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