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인 공동체‘작은 예수회’

2007-08-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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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지체 5명 행복의 공간
매달 첫 토요일 일일찻집

“손님과 만남·대접 즐거워”

“마∼싯∼게 드세요!”
구운 갈비, 샐러드, 김치, 밥이 놓인 접시를 들고 오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그런데 접시를 손님 테이블에 놓으며 떼는 입술은 발걸음만큼 가볍지 않다.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그 즐거운 마음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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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회의 박영미(뒷줄 왼쪽부터), 백헬렌, 김마리아씨가 일일찻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매달 첫째 토요일 오전 11시30분∼오후 2시 ‘작은 예수회’에서 열리는 일일찻집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날이면 이 곳에서 사는 발달장애인 5명은 ‘내 세상’이 된 양, 실컷 얘기하고 즐긴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갈비 구워 대접하는 게 그리 즐거울 수가 없다.
5명 모두 20대 중반 이상인 어른이지만, 정신 연령은 6∼10세 정도다. 그런 만큼 순수하다. 꾸밈이 없다. 그래서 작은 예수회 운영이사인 노요셉씨는 “여기는 싸우고 질투가 없는 곳, 쉽게 행복해지는 곳”이라고 말한다.
찻집 손님이 적으면 이들은 금새 울상이 된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서 얼굴이 환해진다. 언제나 씩씩한 김마리아(30)씨는 들뜬 마음에 요새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래도 기쁜 마음이 표현이 다 안 됐는지, 라인댄스까지 춘다. 이렇듯 단순한 삶을 사는 덕택에 김씨를 비롯한 공동체 식구들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뇌성마비로 몸이 가장 불편한 크리스티나 유씨를 제외하면 나머지 4명은 스스로 세수와 샤워를 할 수 있는 1급 장애자다. 오전 8시면 아트센터에 가서 오후 3시까지 매일 미술을 공부한다. 집에 돌아오면 피아노 레슨도 받고, 성악도 배운다.
얘기가 아트센터로 이어지자 박영미, 백헬렌, 김씨 등이 본격적으로 이성 이야기를 꺼낸다. 박씨가 “같이 아트센터를 다니는 티모시의 초컬릿빛 피부를 그리고 싶다”고 하자, 김씨가 “나는 지미가 더 좋던데”라고 말한다. 백씨에게 좋아하는 남자 없냐고 하자 “성당 가면 매주 보는 남학생이 있다”며 얼굴을 붉힌다.
김씨에게 “결혼도 하고 싶으냐”고 묻자 “큰 아빠 울까봐 걱정된다”고 답한다. 여기서 큰 아빠는 노요셉씨다.
작은 예수회는 박성구 신부가 한국에서 창립한 장애인 공동체다. 수사와 수녀가 장애인과 함께 숙식하며 지낸다. 한국에는 30곳이 있다. LA에는 2000년 6월 오픈해 현재 남가주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발달장애인 숙소다.
이곳은 공동체 식구 5명이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800여달러에 200여 회원이 매달 보내주는 회비 4,000∼5,000달러로 운영된다. 간신히 집세를 내고 버티는 빠듯한 형편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빚 안 지고 산다”고 노씨는 말한다.
일일찻집은 3년 전 시작됐다. 노씨는 “장애인 식구들이 손님 대접하는 것도 배우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말한다. 경험이 쌓인 덕택에 장애인들이 손님과 허물없이 잘 지낸다.
‘또 하나의 예수’를 뜻하는 작은 예수회에는 양노엘 신부(마리아성당)가 매달 세 번째 금요일에 찾아와 미사도 집전하고 있다. 내년에는 한 군데 더 공동체를 마련할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장소 1137 Arapahoe St., LA. 문의 (213)387-3301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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