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8-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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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도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는 어느 신부님의 이야기다.
어느 날 미꾸라지를 키우는 양식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은 그곳에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용인즉, 수만 마리의 미꾸라지가 사는 양식장에 큰 입을 지닌 메기도 함께 서식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양식장 주인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주인의 대답에 기막힌 삶의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미꾸라지를 양식하는 곳에는 늘 몇 마리의 사나운 메기를 넣어두지요. 그것은 미꾸라지로 하여금 안일하게 제 자리에 며칠이고 쉬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태만을 막기 위한 목적이지요. 다시 말해 미꾸라지로 하여금 긴장감 속에서 열심히 헤엄치고 도망 다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사나운 메기는 미꾸라지를 먹고살기에 약간의 미꾸라지들이 잡혀 먹히기도 하지만, 결코 모든 미꾸라지가 다 잡혀 먹히지는 않으니까요. 하루 종일 기껏해야 몇 마리 극소수만 잡혀 먹힌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다른 미꾸라지들은 모두들 열심히 도망 다니면서 운동하다 보니, 건강하고 번식력이 왕성해져 전체적으로는 미꾸라지 수가 훨씬 더 불어나게 되지요. 결론적으로 미꾸라지 양식에 있어서 메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생존’의 신비가 이처럼 우리를 둘러싼 자연계 안에 엄염한 자연법칙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또 다른 인생 삶의 의미를 깊이 음미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대는 과학기술의 개발과 발전으로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삶을 인간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가난과 굶주림에서 해방되는 것은 축복이며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풍요로움과 편리함 속에는 자칫하면 안일해지고, 나태해지려는 또 하나의 독소가 자리잡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옆에 붙은 조그만 예멘이라는 나라가 터져 나오는 석유처럼 하루아침에 부자나라가 되자, 생각지도 않았던 큰 사회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영화관, 체육관 등 온갖 시설과 심지어 대학교육까지 모두 무상으로 되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어디를 가나 길바닥에 드러누워 뒹굴고 있는 젊은이들로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이다.
비단 이런 이야기는 구태여 남의 나라까지 갈 것 없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수 년 전 인기를 모았던 연속극 ‘은실이’와 ‘국희’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는 애들과는 달리, 가난과 역경을 헤쳐가며 자라는 그들의 굳센 삶의 의지와 얼어붙은 겨울의 땅덩어리를 뚫고 나오는 듯한 강인한 정신력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물론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란 애들이 제대로만 자라면 좋은 환경 덕에 더 훌륭히 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웬만큼 정신 차리지 않고 살면 대개 별 볼 일 없이 빌빌거리게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넘치는 것은 차라리 부족함만 못하다’는 삶의 경험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모양이다.
실제 인간의 삶은 흐르는 물과 같아 높낮이가 계속 된다. 물이 그 종착점인 바다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바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웅덩이를 만나는 것처럼, 인생도 수많은 좌절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고통 속에도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가운데도 고통이 함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또한 인생살이의 한 모습이다.
그러기에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니 시련과 좌절, 고난과 역경마저도 삶의 한 단면이 되어 우리네 인생의 의미를 부각시켜 주는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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