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게 힘이 된 한 구절

2007-08-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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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대성(大聖)들이 무아(無我)가 되셨네”
(고 방유룡 신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창립자)

‘한국순교자영성센터’ 간판을 받아 들고 이곳 미국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며 살고 있는 햇수가 벌써 4년이 넘었다. 소음 속 서울 한복판 수녀원에서 늘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요한 아침을 갈망했던 필자에게, 새소리를 기상 음악으로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행복을 안겨준 이곳 수녀원이 그 자체로 피정의 장소요, 기도의 보금자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 한국천주교회사와 순교자들의 영성을 함께 나눌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정말 긴 피정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103위 한국순교 성인들께 미주 지역과 영성센터를 위하여 전구해 달라고 매일같이 청하며 한국천주교회사를 공부하고 순교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한국순교자들과 함께 하는 기도 모임을 가지면서 10여명 교우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기도의 열매는 사도적 활동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3년 전 미국 성당 신부님의 한국 문화와 영성을 자신의 교우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의뢰가 있었다. 기도모임의 교우들, 특별히 평신도로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영성을 살고자 서약한 외부회원들이 한국문화와 영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 부부 순교자’의 거룩한 삶과 순교에 이르는 용덕을 연극으로 공연하였다. 정말 감동적이고 기쁨이 가득한 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교우들이 한국천주교회를 통하여 섭리하신 하느님을 만나고, 한국순교자들의 영성을 통하여 신앙 쇄신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감격이 한없이 컸다. 이를 계기로 매년 그 미국 성당에서 한국 순교자들의 영성을 전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난해 9월24일에는 LA 주교좌성당에서 남가주 한인천주교인들이 모여 ‘제1회 한국순교자 현양대회’를 성대하게 거행하면서, 역시 성극을 통하여 한인 신자들에게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영성을 전할 수 있었다.
오늘 저녁도 노 할아버지부터 두 살짜리 어린 아기를 포함하여 40여명의 교우들이 수녀원 정원과 교육관을 오가며 성 정하상 바오로의 ‘소명’을 성극으로 올리기 위해 자신이 맡은 배역의 대사를 외우고 성인들의 삶 하나 하나를 온전히 자신의 연기로서 담아내고자 열심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고맙고 감사한 것은 성극을 위해 모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온전히 비워 무아(無我)가 된 순교자들이 되어 천상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 기쁨을 미리 맛보는 은총의 체험이다.

김 안 나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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