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당신이 하신 거예요

2007-07-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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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삐’ ‘또르륵’ ‘삐삐삐’ ‘또르륵’ 이 소리는 승욱이의 청력검사를 하는 소리다.
UCLA에 거의 일년만에 청력검사를 하러 왔다. 승욱이의 담당 청력사 지나는 승욱이에게 빈 통과 작은 블럭을 쥐어주며 ‘삐삐’ 소리가 들리면 통에다 블럭을 집어넣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청력검사 하는 방은 한쪽에서 소리를 보내주는 방과 검사하는 방으로 되어 있다. 다른 방에서 지나가 소리를 보내주면 그 소리를 듣고 승욱이가 지시에 반응하는 것을 본다.
와우이식한 지 2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제대로 청력검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승욱이가 검사만 하려면 너무 울어서 제대로 듣고 있는지 어쩐지 조차도 모르고 대충대충 검사를 얼렁뚱땅 마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승욱이가 어찌나 진지한지 거기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듣고 통에다 블럭을 집어넣으니 방 건너편 유리 안에 지나가 행복에 찬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검사를 하고 검사지를 들고 이쪽 방으로 오고 있다. 우리 방 검사실 문이 열리니 밖에서 우리 방을 물끄러미 누군가 들여다보며 “무슨 일이죠? 너무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서요.”
난 검사실 방문을 연 사람과 검사지를 들고 온 지나를 동시에 보았다. 지나가 우리 방 문을 연 그 여자 분에게 승욱이를 소개하며 2년 전에 이 병원에서 시청각장애 아동으로 최초로 와우이식을 한 아이인데 청력검사를 한 결과가 너무 좋다고 설명을 하는데 “어? 혹시” 서로가 손을 가리키며 ”우리 아는 사이죠?”
승욱이가 세살 반이 되도록 보청기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을 내린 나는 와우이식 수술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LA에 H라는 병원에 승욱이를 수술시키려 서류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병원에서는 아이를 보지도 않고 거절을 했을 때 난 승욱이 학교 스피치 선생님에게 친구인 엘리슨을 소개받았다. 오렌지카운티에서 꽤 유명한 청력사로 승욱이가 보청기 때문에 다니는 병원에 부원장으로 있던 분이었다.
LA에 H병원서 수술을 거절당한 나를 만나서 청력사가 아닌 엄마 대 엄마로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엘리슨의 도움으로 UCLA에서 승욱이가 수술을 하게 되었던 거다.
우린 검사실 문 앞에 서서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재회를 했다. “제가 많이 찾은 거 모르죠? 어디로 자리를 옮겼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엘리슨은 “결국 수술을 했군요. 승욱이가 이만큼이나 컸다니 너무 반갑고 이렇게 만나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때 엘리슨이 그랬잖아요.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고. 엘리슨이 만약 승욱이 엄마였다면 미국 전역을 다 돌아다녀서라도 수술을 시킨다고 나에게 그렇게 용기를 줬잖아요. 그리고 당신이 완벽한 추천서를 써 주는 바람에 우리가 UCLA까지 온 거잖아요.”
엘리슨은 한달 전부터 UCLA에 디렉터로 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 우린 계속 승욱이의 검사가 있는 날마다 만나기로 했다. 오늘 청력검사의 결과가 나를 흥분시킨 것이 아니라 엘리슨과의 만남이 나를 흥분시켰다.
‘하나님, 완벽한 시나리오로 우리를 이렇게 각자의 배역을 정해 놓으시고 등장할 때와 퇴장할 때를 다 정해 놓으신 것을 알아요. H병원에서 승욱이 수술이 보기 좋게 거절당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엘리슨을 보내신 거예요. 그리고 그녀의 배역이 끝이 난 후 잠시 퇴장시켰다가 오늘 다시 등장시켜 주신 것을 알아요. 이 모든 일을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당신이 하신 거예요.’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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