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팔불출이라도 좋아… 애처가 남편들의 수다

2007-07-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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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시간나는 사람이 청소하고 요리하는 거 아닌가
가족위해‘집안 일은 나의 일’생각하면 즐거워

문득 궁금해졌다. 남편들의 속내는 어떤지,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그들도 아내처럼 삐치고 샐쭉해지고 토라지기도 하는 건지, 그들에게 가족과 아내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 등등. 그래서 한번 불러 모아보기로 했다. 세상 변했다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뼛속까지 박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50대 가장에서부터 이제 결혼해 깨 볶는 냄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냄새는 날 것이라 확신한 결혼 5년 차 30대 ‘젊은 남자’에 이르기까지 한인 남성 3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7일 LA 한인타운 한 카페에서 ‘벌어진’ 평범하지만 애처가 기가 다분한 남편들의 수다를 살짝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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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가족이라면 끔찍이 사랑하지만 그 역시도 노력과 공부에 의해 발전해 가는 것이라고 믿는 애처가 남편들. 신상준(왼쪽부터), 황정연, 최주현씨가 ‘사랑해’를 외치며 양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가사일은 잘 도와주는지

△신상준(이하 신)=요리하는 것을 원래 좋아한다. 그래서 한 달에 꽤 많은 횟수의 저녁식사는 내가 준비한다. 특히 아내는 내가 해준 조개 칼국수를 제일 좋아한다. 지난해엔 어리굴젓을 담아 교회 식구들에게 돌린 적이 있었는데 한 장로님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그 어리굴젓 담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소문도 있다(웃음).

△황정연(이하 황)=아내보다 시간이 많은 편이라 가사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청소하고 간단한 요리에서부터 아이들 라이드까지 어떨 땐 그냥 집안일은 내일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겁다.
 
△최주현(이하 최)=젊은 부부들이 다 그렇겠지만 가사 일에 ‘이건 네 일, 저건 내 일’이라는 개념이 없다. 시간 나는 사람이 청소를 하고 시간 나는 사람이 요리도 한다.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아내의 일이라는 것인데 둘 다 일하고 바쁜 부부들에게 이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랑하는데 무엇인들 못하리”

■최근 부부싸움의 주제는

△신=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보니 아이들 문제에서부터 시시콜콜한 일까지 의견충돌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서로의 성격에 대해 어떤 부분들은 포기하다보니 그런 충돌이 줄어든 것 같다. 요즘 싸우는 일은 음… 인터넷 바둑이다. 인터넷으로 가끔 바둑을 두는데 앉으면 몇 시간이다 보니 아내는 시간낭비 하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준다.


△황=요즘은 이렇다 할 싸움은 없는 것 같다. 결혼한 뒤 너무 성격이 틀려 둘 다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요즘은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웃음). 말이 포기지 결국 서로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대해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싶다.
 
△최=아들 양육 문제가 주요 이슈인 것 같은데 주로 내가 진다(웃음). 때리면 맞고(웃음), 아내가 쏘아붙여도 그냥 묵묵히 듣는다. 그런데 신기하게 한 번도 아내에게 분노나 화가 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인 남편들의 보수성에 대해

△신=보수적이라는 말엔 아내를 무시하고 권위적이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은데 보수적인 것과 아내를 사랑하는 문제는 별개다. 내 나이 또래 남성들이 다 그렇겠지만 보수적인 건 맞다. 그렇다고 보수적이라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난 보수적이지만 아내에게 애정 표현도 많이 하려 노력한다.

△최=아버지 역시 대단히 보수적인 교육자였지만 어머니에겐 끔찍하셨다. 그런걸 보면 한국 남자들을 싸잡아 보수적이어서 아내와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억울하다.

■아내가 행복해 하던 순간은

△황=나는 스포츠가 생활의 일부인데 반해 아내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런데 내가 운동을 가르쳐 주고나선 함께 즐기게 된 것을 아내 역시 매우 좋아하는 눈치다.

△최=아내는 인정받을 때 가장 행복해 하는 것 같다. 그게 집안 일이 됐든 비즈니스가 됐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면 제일 좋아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으니까.

△신=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직장으로 꽃 배달을 보내면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지만 행복해 하는 것 같다.
또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자주 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눈빛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효과 만점이다.

■부부관계 위기 때 극복 어떻게

△최=성격 때문인지 문제가 생기면 그냥 마음을 닫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서로 상처만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결국 싸움으로 이를지라도 대화하는 용기를 가지려 한다. 덕분에 오히려 최근의 부부 관계가 더 좋아졌다.

△황=크고 작든 부부간의 문제가 생기면 지옥이 따로 없더라.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하려 한다. 또 아이들에게도 부부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이들이 있을 때 포옹하고 애정표현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신=여덟 살 차이 나는 아내와는 신혼부터 성격 차나 내가 사람 좋아해 바깥으로 도는 일로 많이 부딪쳤다. 그러나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그때도 가정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버텼다(웃음).

★ 최주현(39)
반성하는 노력파 새내기
UC 어바인 재료공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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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5년차의 나름 새내기 남편. 이 날 아내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지극한 사랑과 정성을 보여 다른 참석자들의 부러움과 놀라움을 샀다. ‘가정의 회복’이 인류의 회복이며 자신의 삶의 목표라 말하는 최씨는 끊임없이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노력파.
현재 UC 어바인 재료공학과 연구원인 최씨는 아내 안진아(39)씨와 사이에 세돌 된 아들이 있다.

★ 황정연(45)

가족 지상주의자로 개방적
신학대학원생인 열혈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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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지상주의자인 황씨는 대단히 개방적인 남편. 가사와 육아에도 적극적인 데다 재미까지 있다는 열혈남편.
결혼 14년차인 신학대학원생 황씨는 처음엔 성격이 극과 극인 아내와 보조 맞추기가 힘들었지만 요즘은 신혼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고 귀띔한다.
부인 이지연(40)씨와에 딸 셋을 두고 있다.

★ 신상준(55)

소문난 로맨스티스트
다운타운서 자수공장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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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다운타운에서 자수공장을 운영하는 신씨는 자타공인 소문난 로맨티시스트. 결혼 20년차. 워낙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정이 깊어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멋진 요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삶의 크고 작은 굴곡을 거치면서 아내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고.
부인 신정란(47)씨와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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