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칼럼-항우와 유방

2007-07-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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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와 바둑은 아직도 한·중·일 3국에서 해마다 국수전을 열 정도로 대중의 관심과 흥미가 높은 오락경기다. 장기는 그 자체가 초(楚)와 한(漢)의 싸움의 대국전으로서 한 나라의 건국자 유방과 그의 상대 적수였던 초패왕과의 세력다툼의 경기라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BC 221년 진시황이 처음으로 중국대륙 전체를 재패하고 진(秦)이라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지만 그의 권력횡포와 사치가 극도에 도달하여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무너지게 되었는데, 그 재통일 과정에서 항우와 유방이 20여년에 걸친 치열한 대결과 전투의 과정을 그린 것이 초한지(楚漢誌)이고 장기가 생기게 된 배경이다.
진 나라를 멸망하게 하기까지는 항우와 유방은 협력을 하지만 용맹과 통솔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항우는 백전백승하다시피 하였지만 유방은 대 항우와의 싸움에서는 백전백패를 거듭하다가 최후의 일승으로 항우를 꺾게 되고 한의 고조가 되는데 왜 항우가 용맹과 전술에서 우위였으면서 유방에게 패했는가를 약술해 보고자 한다.
두 사람의 인품을 비교하여 보면 기골이 장대하고 우람한 항우는 초나라의 귀족 출신으로 가문도 좋고 힘도 엄청 세어 ‘역발산개세’(力拔山 氣蓋世, 힘은 산을 빼낼 수 있고 그 기운은 온 세상을 덮치고도 남는다)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장사였으며 성품은 그 당시 천하절색의 우미인을 사랑하여 한 번도 외도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감정이 순수하고 순결주의자이고 외골수 고집주의자였다. 이에 반해 유방은 어릴 때부터 가세가 빈한하여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유식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풍모가 훤칠하고 관상도 미남형이어서 어느 술집에 가더라도 주모가 외상으로 술과 밥을 챙겨줄 정도였으며 밤낮으로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는 낙천주의자였다고 한다.
동네 껄렁패와 어울려 주색잡기에 빠져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기도 하였으며, 말과 언변이 뛰어나 궁지에 몰리면 적당히 둘러대어 잘 빠져 나왔다는 유방에게는 순정이나 정감은 사치이며 하루하루를 어떻게 기식할 것인가가 늘 문제가 되었다고 하며 허풍이나 적당한 거짓말로 그때그때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곤 하는 비겁자 또는 겁쟁이로 통하였다. 중국 천하가 드디어 진의 학정에 못 견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관군은 진압에 나섰으나 역부족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유방이 살던 고을의 관청도 불타고 폭도들이 대거 일어났다. 이러한 와중에 유방도 일종의 호구지책의 수단으로 민란에 가담하였으며 훤칠한 키에, 용모에, 허풍 끼 있는 언변에 능통한 유방이었으나 그런 자기 자신의 결점을 커버하기 위하여 자기보다 지략이 높은 사람을 그때그때 참모로 발탁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기를 잘하고 또한 유방은 용인술이 뛰어나 장량(지략가), 한신(최고장군), 소하(행정가) 같은 인물을 얻어 많은 전문가의 재능을 활용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전략전술은 그의 선전술이 항우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며 부하를 아끼고 부하의 제안과 충고를 잘 받아들이는 품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항우는 원래가 명문대가의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부하의 목숨 건 충고도 무시하고 스스로의 아집과 독단으로 행동하고 자기에게 반항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죽임으로써 잔인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일찍부터 유방의 선전술은 기묘하게 전개되는데, 예를 들면 유방이 반란군을 이끌고 산길을 넘어 가다가 커다란 백사 한 마리가 길을 가로 질러 버티고 있었다. 평소에 겁쟁이 소리를 듣던 유방은 술을 잔뜩 마시고 그 뱀 곁으로 가 눈을 딱 감고 칼로 내리쳐 죽이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를 하늘의 뜻으로 고차원화 하여 백사는 백제자(白帝子) 즉 망해 가는 진을 상징하고 유방은 새로운 하늘의 뜻에 따라 일어나는 적제자(赤帝子)임을 자처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 유방이 이끄는 모든 군대는 붉은 깃발을 들고 행진하게 되며 유방이 백제자를 단칼에 베고 적제자가 될 것이라는 선전은 기정사실처럼 번져 유방이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붉은 깃발을 들고 환영하였으며 유방의 얼굴과 눈이 용의 모습이고 왼쪽 다리에 일흔 두개의 사마귀가 있다는 소문에 앞을 다투어 유방을 구경하려 모여들었다고 한다. 또한 유방은 적제자로서의 붉은 용이기 때문에 유방이 가는 곳에는 어디를 불문하고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그 위에 떠 있다고 유방의 신비성을 퍼뜨리게 한 바 이 소문이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온 천하에 널리 퍼졌던 것이다. 이로써 유방은 선하고 항우는 악하며 유방은 새로운 천자감이라는 인식을 백성의 가슴에 깊이 심은 것이 되었다. 이와 같이 백성의 절대 다수의 민심을 얻는다는 것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전쟁을 이긴다는 현대의 심리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도의 심리전술에 능숙한 것이 유방의 특기였으나 자만에 도취해 고집불통인 항우는 그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용맹에서나 가문 또는 문장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항우가 마침내 유방에게 딱 한 번 패함으로서 영원히 패하게 되는데 야밤중에 사면초가를 듣게 되는 항우는 사랑하는 우미인을 보면서 “우혜 우혜 내약 하오”라고 장탄식을 남기고는 초나라를 통하는 장강의 모래사장 위에서 자결하게 된다. 이로써 유방은 중국 역사상 한족의 세를 가장 드높인 한의 제왕이 된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러한 악조건에서의 경험과 선전술은 상품, 브랜드, 회사 등의 이미지 제고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일등을 지향하지 않으면 언제 망할지 모르는 모든 기업은 타 기업을 제압하고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 첫째로 취해야 할 과제는 악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자신감과 선전 홍보다. 이런 뜻에서 천하장사 항우가 겁쟁이 유방에게 패한 이유가 악조건에서의 경험 부족이고 선전전에서 밀리고 민심을 빼앗겼기 때문임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213)999-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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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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