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 이제부터 그리운 스위스

2007-07-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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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낯선 곳에 와 살기도 하고, 처음 본 사람과 정을 주고 받기도 하며,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곳을 무작정 그리워하기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나는 마음이 참 많이 힘들었다.
남편이 공부로 바쁜 동안 그렇게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던 좁은 기숙사에서 함께 살고, 그 외로운 시간을 함께 보낸 이웃에 살던 언니가 남편을 따라 스위스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어느 날 유부초밥과 떡볶이를 주며 내게 말했다. 마치 멀리 떠나는 언니가 동생 달래듯 맛난 엿가락 하나 입에 넣어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 날부터인 것 같다. 아이에게 가져다주라며 언니가 싸 준 유부초밥을 손에 들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나는 마음의 이가 하나 빠진 듯 입을 통하여 심장까지 무작정 슬펐다.
머리가 생각한다면 머리가 아플 텐데 아마도 나는 심장이 생각하는 듯 심장이 아파왔다. 그러며 지난 날 언니와 주고받았던 말들, 언니가 내게 웃어주었던 순간들, 언니가 우리 집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준 설탕에 묻힌 바삭한 누룽지 과자의 냄새까지 하나하나 기억나는 것이었다. 기억도 내 심장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던 나, 정말 언니가 가나보다 하고 느끼게 된 것은 이사 날짜를 통보받고부터였다. 정말 언니가 가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나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스위스로 가고 싶어지고, 나도 어서 어디론가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남편의 공부로 온 이 곳의 모든 아내들은 그렇게 남편의 공부가 끝나면 새 부대를 발령받은 군인처럼 짐을 싸는 것이다. 짐은 싸되 정은 떼고 가야 하는데 사람의 시간이 힘들었던 기억까지도 추억으로 돌리니 서로 그 마음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단순해진 머리와 복잡해진 심장은 언니와 더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마냥 아쉽게 느껴지게 했다. 언니네 가족이 떠나기로 한 날, 공항으로 함께 가며 언니에게 내민 내가 만든 샌드위치가 든 작은 가방 속 작은 편지에 붙은 고양이는 웃고 있는데 나는 울고 있었다.
우리는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그리고 훗날 이 곳에서 함께 한 시간을 마주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붉어진 눈동자를 가진 언니가 말했다. 내가 운전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던 이 길이 나는 너무 그리울 거라고. 그런 언니를 뒤에서 바라보며 그러고 보니 언니의 모습은 이곳보다 스위스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나는 이제부터 스위스가 너무 그리울 거라고 말했다. 언니는 내가 스위스에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스위스가 그리운 나라가 될 줄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조용히 웃으며 이야기했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눈에 보이는 듯 언니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던 나의 팔이 언니를 덥석 안았다. 아마도 그 때 처음 언니를 안아 본 것 같았다. 나의 팔과 입이 말했다. “언니 건강하세요.” 언니의 팔과 입이 내게 말했다. “정연씨도 건강하고, 잘 지내야 해요.” 그러며 언니는 공항으로 들어갔다. 언니가 들어간 문을 보며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날 그 날은 우리 모두 조금 더 늙어 있겠지? 하며 또 심장이 생각을 했다.
‘세희 언니, 나는 이제부터 스위스가 너무너무 그리울 거예요. 그리고 언니가 이곳에 있는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라고 나지막이 내 눈물이 지금도 말을 한다. 아마도 머리로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나는데 심장이 생각하면 눈물이 나나 보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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