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드닝-안수산 여사의‘아시안 가든’

2007-07-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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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안수산 여사의‘아시안 가든’

동양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안수산 여사의 아시안 가든.

가드닝-안수산 여사의‘아시안 가든’

무성해진 숲 사이로 난 길 사이에 만든 작은 돌담길은 한국의 시골마을처럼 정겹기만 하다.

돌 하나·나무 한그루…
동양적인 정취 ‘가득’

안수산 여사의 정원을 거닐다 보면 왠지 모르게 몸도 마음도 평온해진다. 아마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마당의 돌 하나, 나무 한그루에도 잊을 수 없는 한 가족의 역사가, 소중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게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오리엔탈에 열광하는 이곳 미국에서도 우리 집 정원을 아시안 가든으로 꾸미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건만 켜켜이 쌓인 시간과 추억이 가든 담긴 안수산 여사의 정원은 무엇을 줘도 가져오기 힘든 보물 같은 공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노스리지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여사(92)의 집은 아메리칸 스타일로 지어진 전형적인 미국식 주택이지만 정원만큼은 아기자기하면서도 동양적인 멋이 담뿍 담겨 있어 ‘아시안 가든’ 혹은 ‘오리엔탈 정원’이라고 불린다.
도로에서 집안으로 들어서는 입구까지의 앞뜰과 커다란 거실 통창으로 훤히 내다보이는 뒷마당까지 모두 오리엔탈풍인 안수산 여사의 정원은 어느 동네를 가든, 누가 집주인이든 마치 교과서의 한 페이지처럼 파란 잔디 일색인 아메리칸 스타일 정원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어서 전혀 안면이 없는 이웃들조차 정원 구경을 위해 문을 두드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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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있는 소품들.

“처음 아시안 스타일로 정원을 꾸몄더니 이웃들 중 몇몇은 미국식 정원으로 바꾸라고 항의하기도 했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자기네 정원도 오리엔탈로 꾸미려고 구경도 오고 하니 세월이 참 많이 달라진 거지”
그다지 넓지 않아 오히려 제멋인 안수산 여사의 아시안 가든은 미국 한가운데서 동양적인 게 얼마나 멋스러운지를 알려주는 곳이 기도하지만, 1970년부터 2007년 지금까지 37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어져 내려온 소중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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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정원에서 안수산 여사가 물을 주고 있다. 92세 고령의 나이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정원을 거닌다고.

안수산 여사의 장남인 필립 커디(Philip Cuddy)씨는 “1959년 이곳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이웃과 다름없이 잔디가 깔린 미국식 정원이었지만 아버지가 손수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의 아시안 가든의 모습을 갖췄다”면서 “그때 내가 15세 꼬마였는데 50이 넘은 지금까지 같은 모습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지 않냐”며 감회를 밝혔다.

가족의 추억 담긴 ‘보물 정원’


여행지서 수집해 온 돌
부처상·대나무 숲길 등
마음 평안해지는‘박물관’

하루하루 귀중한 시간이 모여 이제는 한 가족의 추억의 현장이 돼버린 이 정원은 이웃사람들이 박물관의 한 코너처럼 여기는 그저 신기한 정원을 넘어 안수산 여사에게는 1994년 작고한 남편 프랭크 커디(Frank Cuddy)씨와의 온갖 추억으로 함부로 놓지 못할 공간이자, 장남인 필립씨에게는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이 가득 담겨있는 추억의 장소다.
“한번은 정원 뒤쪽에 있는 나무가 말라 죽은 적이 있어요. 보기에도 흉하고 다른 나무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 뽑아 버리려고 했는데 어머님이 절대 못 뽑게 하시더라고요. 아버님께서 손수 심으신 거니까 그대로 두라고…”
거실 큰 창을 열고 나가면 올망졸망 중간 크기의 돌들과 징검다리처럼 배열해둔 동그란 돌다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돌들은 여행을 좋아했던 프랭크씨가 랭캐스터, 리버사이드 등 캘리포니아 전역을 여행하며 수집한 것들로 정원에 하나 둘 놓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아버지가 손수 마련한 돌들 사이에 놓인 여러 가지 스타일의 부처상은 한때 불교에 심취했던 필립씨가 갖다 놓은 것으로 부자의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정원 가득 포근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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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산 여사의 남편이 가꾼 정원 한쪽에는 현재 정원 관리사로 활약(?)중인 장남 필립 커디씨가 매치한 부처상과 아기자기한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돌다리를 건너면 뒷마당 전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키 큰 대나무가 작은 숲을 이뤄 아시안 가든의 멋을 제대로 살려주는데 처음 정원을 꾸밀 때 어른 허리 정도 키였던 ‘베이비 대나무’가 제법 의젓한 ‘어른 대나무’로 성장해 가족의 추억과 역사를 하나 가득 품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동양미 물씬 풍기는 나무들도 정원 곳곳에 심어져 있어 동양 어디에선가 공수해온 것으로 생각되었건만 와이어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동양 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내추럴하게 키우면 캘리포니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가 되지만 와이어로 모양(shape)을 만들어 그대로 자라게 한 다음 모양을 내어 트림(trim)하면 한국 고궁에서나 볼 법한 아시안 스타일 나무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 필립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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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있는 소품 하나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어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요즘 이 정원을 손질하고 가꾸는 것은 온전히 장남 필립씨의 몫이다. 매일 한 시간, 주말에는 3-4시간 정도 가꿔야 지금의 모습이 유지되는데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duty)라고 여기다보니 어느새 그의 취미도 그 옛날 아버지의 취미였던 ‘가드닝’이 돼버렸다며 활짝 웃는다.

<글 성민정.사진 신효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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