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일기-샌타모니카 해변 단상

2007-06-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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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타모니카 해변에 노을이 진다. 진홍빛 눈물을 쏟아내는 바다의 석양빛에는 장엄한 애상(哀傷)이 깔려 있다. 미국의 하루해는 동부 뉴욕의 존스 비치에서 힘찬 서막을 열고 이 곳 LA의 서쪽 끝바다에서 소임을 마친다. 푸른 파도는 갈매기를 부르고 비키니 차림의 높은 야자수는 하늘에 펄럭이는 저녁 해변, 서늘한 바람을 타고 서핑과 조깅을 즐기는 평화의 바다에서 나는 모래사장을 걷는다. 해변에 앉아 순백의 조개껍질을 들여다보면서 오랜 침식의 과거를 묻는다. 너희들은 언제부터 옷을 벗고 이곳에 누워 파도에 씻겨졌느냐고.
위로는 할리웃 스타들의 별장이 깔린 말리부 비치가 자리잡고 남으로는 젊음의 바다라 일컬어지는 베니스 비치가 연결된다. 비치 발리의 향연이 열리는 선셋 비치가 저 아래 남쪽에서 손을 흔든다. 아름다운 1번 해변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서부해안의 절경은 샌디에고로 부터 북으로 시애틀까지 2,000여마일에 걸쳐 있다. 그 긴 해변길의 모체가 바로 샌타모니카 비치다. 멋진 바닷가 풍경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슬픈 역사는 바로 샌타바바라에서 비롯됐다.
본래 츄메시(Chumash)인디언들이 한적하게 사냥과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삼아 평온하게 살아가던 샌타바바라 마을. 1542년 스페인 함대가 침공하면서 역사는 달라졌다. 이후 미국과 멕시코가 전쟁을 치른 끝에 멕시코가 항복하고 서부 7개주를 미국에 양도한 결과, 캘리포니아주도 1850년에 미 영토로 편입됐다.
원주민의 호소는 전쟁 기록 뒷전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정복자에 의해 은폐된 고통의 역사가 신음하고 있다. 해변의 바람이 그래서 노을 아래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슬픔이 하늘을 덮어 빗물조차 뿌리지 않는 땅, 남가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 (알버트 하몬드)
모하비 사막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샌타애나풍과 주변의 엔젤스 국립공원 등 산악지형에 갇혀 분지를 형성한 탓에 여름에는 비가 생산되지 않는 특이한 지역. 촉촉한 비의 축복으로부터 버려진 곳, 가뭄이 계속되고 산불이 넘나드는 이 사막에 어머니의 젖줄기와 같은 모성애를 뿌려주는 분수대가 있다면 그것이 곧 산타모니카 해변이다.
외세의 이방인들이 부르는 승리의 축가에 밀려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는 패자의 회한을 우리는 경청해야 한다. 매일 저녁 샌타모니카 해변을 그래서 석양은 핏빛으로 물들이는 것일까. 눈물은 흘려도 비는 내려주지 않는 곳. 최근의 부동산 시장과 흡사하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매물 속에 거래는 가뭄에 갇혔는데 시장에선 경기회복의 단비가 내리기만 기다린다.
부동산 에이전트의 속은 타들어 가고 융자와 에스크로 건수는 매달 줄어드는 추세에 있으며 차압과 숏세일 광고가 난무한다. 월말에는 여지없이 부실해진 손익계산서가 책상에서 얼굴을 내미는 현실이다. 답답한 마음은 하늘을 향해 외쳐댄다.
“저주를 멈추고 이제 그만 이 땅에 여름이여 비를 주소서. 하늘이여 비를 내리소서. 폭염에 번지는 분노의 산불을 잠재울 수 있도록 거친 들판, 황량한 초목에 빗줄기야 퍼부어 다오. 타 들어가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마른 산과 강가에 생명수를 내려다오. 아름다운 샌타모니카 해변에 이글대는 뜨거운 햇살 위에 시원한 빗줄기 쏟아 부어다오. 그리하여 과거사의 증오를 씻고 원한을 풀어 콸콸 흐르는 진흙탕 황토물이 강물 되고 커다란 바닷길에 들 수 있도록 그렇게 비야 내려 주려무나. 침략의 역사를 참회하여 고해성사 바치니 진정한 평화의 옥토를 이제 우리에게 되돌려 다오.”
(213)590-5001
luxtrader@naver.com
김준하
<아르누보씨티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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