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인 모습에서 예수 만났죠”

2007-06-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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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모습에서 예수 만났죠”

박성구 신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며 사랑을 나누다 보면 하느님이 살아 계심을 절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진천규 기자>

‘영의 콘서트’연 박성구 신부

장애인 수도회‘작은예수회’세계 첫 설립
“신체 장애보다 영적 장애가 더 큰 문제”

박성구 신부의 목소리는 항상 쉬어 있다. 하루에 세 번, 한 번에 두 시간씩, 영가가 위주인 미사를 집전하니 목이 쉴 틈이 없는 탓이다.
‘쇳소리’가 나는 목으로 박 신부는 16일 성프란치스코 한인 성당에서 ‘영의 콘서트’를 열었다. 목은 아파도 ‘영으로 부르는 노래’이기에 노랫말이 마음으로 잘 전달되는 듯 했다. 게다가 자신이 쓴 노랫말이 아닌가.
박 신부가 ‘영의 콘서트’를 미국에서 갖기는 처음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30여 차례 열린 콘서트를 통해 박 신부는 장애인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의 마음에 영가가 훨씬 더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박 신부가 1983년 세계 최초로 장애인 수도회인 ‘작은예수 수도회 수녀회’를 설립한 뒤 그 사역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세계 50곳의 작은예수회에서 장애인과 홈리스 등 5,000명이 17만 ‘사랑 나눔’ 회원의 도움을 받아 삶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뒹굴며 함께 살도록 하겠다던 박 신부의 목표가 이루어진 셈이다.
박 신부가 작은예수회를 설립한 건 서울 성산동 본당을 지을 때다. 성전 건축에 바쁘던 참인데 한 장애인 부부가 “같이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공사가 끝난 다음에 찾아와 달라’는 말을 막 하려던 순간 누가복음에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인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이 장애인을 돌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죽어갈 때도 도와주지 않고 지나치는 제사장과 다를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마리아인이 되자 마음먹었죠.”
그때부터 ‘가장 고통스런 장애인의 모습 속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 속에서 하느님 왕국을 건설한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경기도 파주에 무허가 집을 짓고 장애인 공동체는 시작됐다. 집이 완공돼 봉헌식을 할 때 마태복음 25장40절(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을 읽었다고 한다. 장애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래서 몸도 움직일 수 없어 누워만 사는 수녀를 수도원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한 팔이 없는 수도사에게 부제를 서품해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수도자의 가장 중요한 몫이 하늘나라를 증거하는 것이라면, 하느님을 증거하며 복음적 삶을 살 수 있는 장애인은 진정한 수도자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작은예수회의 슬로건이 ‘보이는 장애인의 모습이 안 보이는 우리의 참모습’입니다. 몸은 멀쩡해도 영적 장애를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신체장애인은 겉으로 봐도 넘어질까 걱정되지만, 영적 장애인은 알 수가 없잖아요. 옳고 그름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 실은 더 무섭죠.”
박 신부는 장애인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작은예수회를 운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냥 같이 살뿐이라고. 세상은 사람을 차별해도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박 신부는 믿는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위해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지 몰라요. 영적 장애와 질환을 고쳐달라고 힘써 부르짖어요. 장애인이 영가를 통해 삶의 기쁨과 하느님의 힘을 느낄 때까지는 목이 터져라 부를 겁니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지만, 박 신부는 그래서 여전히 활기차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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