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바보 엄마

2007-06-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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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그덕 삐그덕. 승욱이가 새로운 기숙사와 학교에 적응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기숙사에 가서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제시간에 자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다.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아 기숙사 디렉터가 코리아타운 한국마켓에 가서 음식까지 사다 주고 난리를 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승욱이가 기숙사에 가면 제일 먼저 잠 한번 실컷 자리라 마음 먹었고, 읽고 싶었던 책들을 쌓아놓고 읽으리라 마음 먹었고, 큰아이와 마음껏 놀아주고 시간을 보내주려 마음 먹었고, 저녁에 엄마와 마주앉아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도란도란 식사시간도 가지려 했었다. 그런데 단 한가지도 실천을 하지 못했다. 7년 동안 승욱이 때문에 조각 잠을 자던 습관 때문에 잠을 자면서도 시간마다 깨고, 책을 보려 해도 하얀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씨라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큰 아이와 놀아주려니 제대로 놀아 준 적이 없어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엄마랑 저녁 밥상에 마주 앉으면 승욱이는 뭐 할까로 온통 화제가 승욱이니 도통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
이 바보. 자유를 줘도 자유를 못 누리니. 왔다 갔다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집안에서도 안절부절 잠을 자려고 누워서 ‘내일은 승욱이를 데리고 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은 것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 일주일만 잘 버티면 승욱이를 볼 수 있다. 꿈에 부풀어 있는데 승욱이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인데 얼마 후에 있을 IEP자료를 위해 잠깐 만났으면 한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난 학교로 찾아가기로 약속을 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의사와 나눴다. 3주 동안 승욱이를 지켜본 자신의 소감을 솔직히 이야기해 주었다.
아주 밝고 명랑하고 자기 표현이 분명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하는 말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이 바보. 자기 자식이 되게 똑똑한 줄 아네. 의사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니 아직 승욱이가 학교가 끝나지 않은 시간이다. 난 여기까지 왔는데 아들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에게는 승욱이에게 말을 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아주 잠깐만 멀리서 승욱이를 보기로 했다.
교실로 찾아가니 교실에 승욱이가 없다. 보조교사와 화장실에 갔다고 곧 올 것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난 화장실로 향했다. 멀리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벽을 더듬으며 교실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승욱아, 엄마 여기 있어. 우리 아들 많이 컸네.’ 엄마가 열 발자국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장난을 치며 교실 쪽으로 걸어온다.
‘한번 안아 봤으면 좋겠다. 키가 훌쩍 큰 건지 아니면 밥을 안먹어서 마른 건지 한 번 안아보면 단번에 알텐데.’
기숙사에 보내면서 한 치수 큰 바지를 사서 보냈는데 큰 바지를 입어서 그런지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교실로 들어가는 승욱이를 따라가며 ‘어휴, 우리 아들 생각보다 너무 잘 있네, 너무 잘 적응하고 있구나. 고마워’ 스쿨버스를 탈 시간이 남아 있다고 선생님이 책상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니 얌전하게 자기 책상에 앉아 있다. 옆에 앉아 있는 친구의 말소리가 재미있는지 얼굴에 미소가 하나 가득이다.
‘의젓하다. 참 잘 커줬네. 감사하다’ 멀리서 승욱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스쿨버스 탈 시간이라고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해서 눈물이 나고 가까이서 만져볼 수 없어서 또 눈물이 나고 그동안의 고민과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짐에 눈물이 난다.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기숙사에서 집에 데리고 올 수 있으니 일주일만 참자. 그러나 저러나 이 바보 엄마의 눈물은 언제쯤 사라질까?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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