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6-15 (금)
크게 작게
나무집 만들기

어릴 때부터 나무집(Tree House)을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숲속 나무집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에서 본 피터팬이나 로빈슨 크루소가 살던 곳도 나무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테라비티아로 향하는 다리’(Bridge to Terabithia)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11세 된 아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놀던 그런 나무집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아침, 저녁으로 졸라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콜로라도로 이사 온 집에는 제법 덩치가 큰 나무들이 많이 있어 여건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무집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어릴 때부터 나무집을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아들과 나의 소원을 동시에 풀 겸 한번 공사를 시작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인터넷을 통해 나무집을 짓는 방법, 필요한 재료, 연장 등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며, 나름대로 설계도면을 만들어서 공사를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의외로 여러 사람들이 나무집을 지으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아주 상세하고 재미있게 올려놓은 정보들이 많아 이 자료들만을 가지고도 혼자 나무집을 짓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나무집 공사를 하면서 나무집 공사 원칙 가운데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다는 점을 어슬픈 목수가 된 목사로서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나무집을 짓는데는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무 위에 집을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적당한 높이(8피트 정도)에 무게를 받혀줄 기초각목 설치 작업을 해야 되는데 이 대들보(Beam) 놓는 기초 작업만 잘되면 일단 나무집 짓는데 절반은 성공했다고 보면 된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서도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 기초가 부실한 상태에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면 모양새는 그럴듯해 보여도 조금만 바람이 불면 언젠가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평신도보다 오히려 목회자들이 더 기초에 충실해야 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목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면 늘 다른 사람의 문제를 들어주고, 가르치는 입장에 있어 정작 자신의 문제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수는 목사가 가장 먼저 잘 믿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테드 헤거드 목사나 뉴욕의 김모 목사와 같은 가증스럽고 치욕스런 목회자 간통 사건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둘째 나무집을 짓는데 잔가지들은 장애만 된다는 사실이다. 대들보를 올리기 위해 나는 잔가지를 먼저 잘라냈다. 잔가지가 많을 때는 도무지 어디쯤 들보를 올려야 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 가지를 쳐내고 나니까 듬직한 나무중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너무 많은 것을 쫓다보면 신앙의 중심을 보지 못하게 된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이 바쁘거나, 너무 많은 일들을 동시에 벌이다가 정작 꼭 해야 될 중요한 일들을 시간이 안 돼 간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아직까지 예수님은 잘 모르는 ‘헛것 신앙’과 같은 것이다.
나무집을 완성할 때까지 손가락에 시퍼런 멍이 몇 개나 더 생길지 모르겠지만, 아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고 잔가지를 쳐내는 심정으로 오늘도 나는 열심히 못질을 하고 있다. baekstephen@yahoo.com

백 승 환 (목사·예찬출판기획)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