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6-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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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모델

요즘 세상은 가정에서 아버지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말보다는 TV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탓일까. 그만큼 아버지의 영향력이 약해져 가고 있다.
한세기 전만 해도 아버지의 말은 자녀에게 하느님의 존재만큼 영향력이 컸다. 물론 그 당시 상황이 다 옳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존재는 자녀의 인성 형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현대는 아버지의 말이 들어가 자리잡기 힘들 정도로 어려서부터 TV와 인터넷 정보가 자녀의 생각 안에 질긴 잡초처럼 뿌리를 뻗어 번져가고 있다. 그런 나머지 아버지의 꽃씨가 떨어져도 뿌리내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거기다가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관이 형성될 유치원·초등학교 소년기부터 주위 아이의 과반수가 아버지 없이 한쪽 부모와 살고 있으니 아버지의 존재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인간과 동물의 성장 차이는 어쩌면 아버지의 존재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이외의 동물 세계에서는 수컷인 아버지는 교미를 통해 새끼를 만드는 일이 거의 전부다. 일단 새끼가 태어나면 먹이를 주고 키우는 것은 암컷인 엄마의 몫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녀가 태어나면 아빠는 엄마와 더불어 최소한 성년이 될 때까지 20년을 함께 자녀를 양육해간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제공해줄 수 있는 무한대의 생명력이 또 하나의 인간을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옛부터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가 사는 대로 자식이 아버지 삶을 모방한다는 말이다. 마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의 ‘인생 모델’이 된다.
그런데 요새는 아버지가 가정을 떠나 돈 버는 데만 매달리고 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영향력을 미칠 기회가 그만큼 적어져 간다는 소리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들어가 살아야 할 자녀의 마음속에 TV나 인터넷의 왜곡된 정보가 자리잡고 있다.
외양만 내 자식일 뿐, 진짜 속은 남의 자식이 되어버리기 쉬운 겁나고 슬픈 세상이다. 그 결과 잠깐 세상살이에 한눈 팔다 정신차려 아버지가 돼 돌아오면, 어느 순간 사춘기를 거친 사랑스런 자녀는 ‘딴 아이’가 돼 아버지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
아버지가 자리잡고 있어야 할 마음 속에 아버지가 안 계시면 허전하고 불안한 사춘기 자녀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방황하는 자녀를 노리고 있는 악의 세력이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사자처럼, 술·담배·마리화나·코케인·도박·성범죄·갱의 유혹이 사랑스런 자녀를 수시로 도처에서 노리고 있다.
정말 지금은 아버지가 ‘깨어나야’ 할 때다. 그리하여 가정에서 자녀와 더 많은 ‘대화와 시간’을 나누어야 한다.

김 재 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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