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6-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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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

영국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M. 롤은 1995년 내놓은 저서 ‘시간의 풍상’(A Test of Time)으로 고고학과 이집트 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뜨거운 사막을 뒤지는 집념의 현장 답사를 통해서 돌무더기 속에서 찾아낸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또 고대 이집트의 새 연표를 제시함으로써 이집트 역사 속에 투영된 성경의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인식시켰습니다.
게을렀던지, 부주의했던지, 이집트의 고대 유적을 적당히 답사하고 부분적인 자료로 성서 역사를 증명하려 했던 종전의 고고학 자료를 뒤집고, 롤은 새로운 이집트 연표에 의한 창세기의 인물들과 기록들의 진위를 밝혀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창세기를 마치 신화처럼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살아있는 역사로서 다시 인식하게 한 현대 고고학의 거장입니다.
롤이 ‘시간의 풍상’의 첫 서두에 퍼시 비시 셸리(1792∼1822)의 시 ‘오지만디아스’를 실은 것은 의미 심장합니다.
『나는 고대의 땅에서 온 나그네를 만났네./그는 이렇게 말했다네./”몸뚱이도 없는 거대한 돌다리 두개가 사막에 서 있었다…/그 근처 모래 위에는 부서진 얼굴이 하나 반쯤 묻혀 있었다./찌푸린 표정, 굳게 다문 입술, 깔보는 듯한 냉소에는/조각가가 분출한 열정이 그 생명없는 돌에 새겨져 있어서/그것을 흉내낸 손과 키운 심장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했다./그리고 그 대좌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너희들 막강한 자들아, 내 업적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그 옆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무너져내린 그 거대한 잔해 주위에는 황량하고 쓸쓸한 사막이/저 멀리까지 끝없이 뻗어 있을 뿐”이라고…』
오지만디아스는 이집트의 강력한 왕조를 구축했던 람세스 2세의 그리스어 이름입니다.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이단시인 셸리가 쓴 이 시는 당시 정치적 개혁을 추구하고 압제받는 사람들 편에서 소위 기존 세력에 대한 저항과 오만한 권력의 덧없음을 뜨겁게 표출하고 있지만, 한 세기 후의 고고학자 롤은 또 다른 의미로 이 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지만디아스, 다시 말하자면 람세스 2세는 그가 재위하던 때, 나일강가에 거대한 아부시벨 신전을 건축하였고, 동시에 자기 치세를 기념하는 장제전, 라메세움을 조성했습니다. 거기 제2마당 입구에 거대한 저승의 신 오시리드가 세워져 있고, 그 안에는 목잘린 오지만디아스의 입상들이 무너진 채 모래바람의 폐허 속에 뒹굴고 있다고 합니다.
롤이 셸리의 시를 인용한 것은 이 라메세움을 답사하면서 느낀 정서를 잘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은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그 성공과 치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망각 속으로 쓸어 넣는다는 것을 사막의 답사현장에서 롤은 너무나 절실하고 충격적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성서의 위대한 신앙인들이 자신을 돌조각에 새겨 보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역사와 시간 속에 계신 하나님을 신앙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시간 속의 하나님을 행한 참된 믿음을 찾았고, 그 분 안에서 은혜로 주어지는 자기 신앙의 영원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인이 신앙의 대상이나 상징물을 조각해서 세우고 보존하려 한다면 그것은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부질없는 일입니다. 롤은 사막 속에서 그 부질없는 노력의 결과를 보았던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시간 속에 있지 공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뵙습니다.
물질을 추구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행위)을 잘 가꾸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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