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심 그렸더니 평안은‘덤’

2007-05-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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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 그렸더니 평안은‘덤’

불화를 그리며 불심을 익히고 있는 관음사의 범휴 주지 스님과 ‘불화 단청 지킴이’ 회원들. <진천규 기자>

‘불화 전시회’연 단청 지킴이 회원들

비단·닥종이에 한획… 고려불화에 매료
“세상에 부처님 보이는 기쁨에 푹 빠졌죠”

82세 노보살인 현선옥(법명 정연화)씨. 눈도 잘 보이지 않지만 온갖 정성을 다 쏟아 8개월만에 ‘아미타 내영도’를 완성했다.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 부처가 극락세계로 향하는 모습을 그렸다.
“눈이 침침해 돋보기를 끼고 그렸어요. 그런데 그리는 동안은 오직 부처님만 생각했기에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관음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6월3일까지 열고 있는 불화 전시회. 관음사 불교문화센터 ‘불화 단청 지킴이’ 소속 불자 3명이 그린 불화 9점이 법당을 장식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공규덕씨의 지도를 받는 불자 11명이 갈고 닦은 솜씨 중에서 고른 작품이다.
아미타와 8대 보살이 함께 있는 아미타 구존도,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 지옥에서 고생하는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지장보살 등이 작품의 소재다. 모두 고려시대 불화에 자주 등장하던 주인공이다.
불화를 그리는 모임은 2004년에 출범했고, 지난해부터 ‘불화 단청 지킴이’라는 모임 명칭을 썼다. 전시회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은 고려불화를 그린다. 오방색(빨강, 파랑, 검정, 흰색, 노랑)을 강렬하게 사용했던 조선불화와 달리 고려불화는 선을 중시한다. 천연안료를 사용하고, 배채법(앞면뿐만 아니라 뒷면에도 색을 칠하기)을 통해 은은한 색이 배어나도록 한 게 고려불화의 특징이다. 종이가 아닌 비단이나 닥종이에 그리는 것도 다르다.
이들은 일요일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불화를 토론한다. 평일에 그린 불화를 놓고 불자끼리 조언을 한다. 불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 박물관도 찾아다니고, 책도 많이 본다. 그래서 고려불화의 특징을 묻자 누구나 할 것 없이 답변이 술술 나온다.
공씨 빼고는 모두 이전에 그림과는 인연이 없었다. 붓질을 어떻게 하는 지부터 배운 초보생이다. 그런데 지금은 “‘골프와 그림 중 무엇을 택하겠냐’는 질문에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림이라고 말한다”(이민숙씨)고 할 정도로 불화에 푹 빠졌다.
이경희씨는 “불화는 꼭 불교의 재산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회화”라며 “세계에 200점도 남지 않은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에 세계가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
공씨는 “불자들이 그린 불화가 앞으로 많이 늘어나면 전시회도 절을 벗어나 개최할 생각도 있다”며 “불교인만 아니라 한국 전통 문화로서 불화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민숙씨는 “불화를 통해 비단에 부처님이 세상에 보이게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 줄 모른다”며 “그리는 동안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느낌은 해보지 않은 절대 모른다”고 말한다.
이 모임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범휴 관음사 주지스님은 “종교화는 자기 표현이 아니라 종교를 표방하기에 불화나 성화나 모두 신앙을 성숙시켜준다”며 “정신을 집중해 그리다 보면 다른 생각이 없어지며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기 때문에 수행 자체”라고 말했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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