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2007-05-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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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땐 미래, 늙어선 과거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순으로 시제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물리적 시간의 흐름일 뿐, 사람의 정서적 시간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은 젊었을 땐 미래가 앞에 있지만, 늙어선 과거가 앞에 있다.
분명 젊음과 노년 사이에 긴 시간의 흐름이 있고 과거와 미래라는 순서적 질서가 있다. 그러나 정서적인 시간의 흐름은 꼭 물리적인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려가는 인간의 속성상 젊었을 때는 언제나 미래를 상상한다. 미래를 계획하고 앞을 향하여 달려간다.
가끔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점검일 뿐이다. 젊은이에게 과거는 철저히 뒤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달려 나가는 데 방해요인이 되지 않는다. 잠깐 뒤돌아본 과거의 잔영은 오히려 앞을 달려가는 데 추진력을 제공한다.
젊었을 때는 과거의 실수나 아픔이 미래로 가는 데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힘을 주는 약이 된다. 만일 젊은이가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늙어가면서 미래와 과거의 순서가 뒤바뀐다. 늙음의 미래는 죽음 때문일까? 늙은 사람은 미래를 논하기 싫어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미래는 두려운 존재이다. 현재에 머물기도 두려워한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온통 과거가 보인다. 그리고 과거를 향하여 간다. 과거가 목표가 된다.
이처럼 늙은 사람 앞에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온통 지나간 이야기만 하는 이치가 바로 그렇다. 그러나 이런 역방향의 생각이 노년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옛날의 추억과 성공담이 노년에 내리 비치는 한줄기 늦가을 양지의 햇살처럼 따스함을 준다.
그러나 가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늙음이 오히려 추하다. 젊어지려고만 애쓰는 것은 애처로운 추함이다. 노년의 미래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서글픈 일이나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신비한 일이다.
젊음의 파워는 미래로 가는 추진력이고, 늙음의 파워는 과거를 감싸는 포용력이다. 젊은이는 과거를 부정하고 비난함으로써 미래로 나가고, 늙은이는 과거를 인정하고 감싸안음으로써 미래의 종착역을 맞는다.
그럼 현재의 위치는 어디인가? 엄격히 말한다면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미래가 밀물처럼 다가와 순식간에 과거로 변하는 것이 현재다. 이처럼 현재란 순간의 빛으로 사라져버리는 찰나이다.
그러기에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고 하는 말은 순전히 과거 지향적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려면 반드시 미래지향적이 돼야 한다. 현재는 순간적으로 과거로 변하는 무서운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자신의 미래가 규정하는 법이다. 자신의 과거 또한 미래가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철저한 설계와 구상은 단순히 꿈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가 바로 자신의 현재와 과거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본다.
“시력이 없는 사람이 장애가 아니라 비전이 없는 사람이 심각한 장애인이다.”

김 홍 덕 (목사·조이장애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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