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2007-05-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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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제

얼마 전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지난 한 해 동안 5,830만달러를 기부해서, 미국 내 스포츠, 연예계 유명인사 중 가장 많은 기부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약 1년 전에는 ‘투자의 귀재’인 워렌 버핏이 무려 370억달러를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 의사를 밝혀, 세간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해마다 미국인들의 자선기금 현황을 발표하는 ‘Giving USA’ 2006년 자선 연감에는 조지 소로스, 마이클 블룸버그, 빌 게이츠, 테드 터너 등 미국을 움직이는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기부자 50인’의 명단에 어김없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그들의 자선 기부에 대해서 “재산이 많으니까 당연하겠지”라며 큰 의미를 두는 것에 반대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이 쉬울 수는 없습니다.
가끔 한국 신문에 자신의 재산을 사회나 학교 등에 희사해서 아름다운 손길로 묘사되는 사람들은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내로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거리에서 30년 넘게 김밥을 팔아 온 ‘김밥집 할머니’거나, 평생 판자촌에 살면서 볼펜장사로 자수 성가한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는 할아버지’입니다. 이런 걸 볼 때 미국 자선 연감에 이름이 올라 있는 그들의 자선 기부를 결코 가진 사람들의 당연한 행동이라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배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 격언입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정신이야말로 그들을 자선 기부의 현장으로 이끌고, 그것을 가장 명예로운 행동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미국 문화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정신과 행동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05년 자선 연감에 따르면 약 6만여 미국 내 자선 단체에 출연된 기부금 총액이 5,000억달러이며 그 중 76%가 일반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니 놀랍습니다.
축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의 단면을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Oprahrizatio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만큼 대중 파급력을 지닌 오프라 윈프리, 그와 한 끼 점심 값을 위해 62만달러를 아낌없이 각출하게 하는 워렌 버핏의 가치는 그들에게 붙여진 ‘토크쇼의 여왕’ ‘투자의 귀재’라는 수식어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운 삶에 아낌없이 보내는 미국 국민들의 소리 없는 갈채일 것입니다.
한인사회가 미국 땅에 뿌리 내린 지도 한 세기를 훌쩍 넘었습니다. 끈질기고 우수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도전과 극복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풍요로운 나라에서도 경제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당당히 자리매김 하였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이 나라의 풍요함 속에 자리잡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한인사회에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멀지 않은 장래에 자선 연감의 ‘아름다운 손길 50인’의 명단에서 아주 특이한 우리 민족의 라스트 네임을 찾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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