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2007-05-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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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삶의 비전은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보는 것이다.
언젠가 사업에 성공한 세계적인 대기업인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만나기 위해 인도 캘커타의 수녀원을 찾아갔다. 그가 막상 수녀님을 만나고 그 분이 하는 일을 직접 눈으로 보니 약간 실망했다. 그가 알기로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마더 데레사의 일이 인류 평화를 위해 거창한(?)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찾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실망한 그가 떠나는 날, 죽어가는 영아를 가슴에 안고 있는 데레사 수녀에게 말했다.
“수녀님! 60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서 버려져 죽어가는 어린 아이 몇 명 돌본다고 이 세상이 달라질 것이 있을까요? 세계 평화에 공헌하고 계신다는 수녀님이 그런 일만 하신다니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가쁜 숨을 헐떡거리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영아를 가슴에 안고서 얼굴을 맞대고 있던 데레사 수녀님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도 알고 보면 거대한 것도 하나가 모여 된 것이 아닙니까!”
이 한 마디가 순간, 거대한 기업을 이루는 데 평생 수고했던 대기업인의 심령을 감동시켰다. ‘작은’ 생명 하나를 우주처럼 사랑하며 온 세상 안에 평화를 심는데 전 생애를 바쳤던 마더 데레사의 선교사업에 결국은 그 기업인이 훗날 가장 큰 후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데레사 수녀의 힘은 화려한 명성이나 거창스런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소박하고 헌신적인 삶을 통해 ‘작은 것’의 소중한 의미를 삶으로 증거한 그 분의 신념과 비전의 힘이었다. 그 분은 진정 사소한 작은 것 안에 풍요로운 삶의 비밀이 담겨 있음을 보시며 사셨던 분이었다.
이와 달리 세상 사람들은 으레 큰 것을 소유해야만 행복할 것으로 착각하며 살 때가 많다. 그래서 집만 해도 큰 집을 선망한다. 남 기죽이게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것을 성공의 상징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자동차도, 자기의 분수를 넘어 무리를 해서라도 고가의 차를 타고 싶어한다. 그런 경우마저도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기본 욕구 때문이라면, 남의 눈에는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무거운 멍에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자기 집도 페이먼트의 부담이 없어야 진짜 안락의 보금자리가 된다. 집 관리에 힘이 부쳐 철마다 꽃 한 송이 심어볼 여유나 시간이 없다면 그건 남의 집이나 무엇이 다를까.
모든 사소한 작은 것 안에 풍요로운 삶의 비밀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며 살 때, 삶이 그만큼 풍요롭고 건강해진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늘나라를 작은 ‘겨자씨’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

김재동 <의사·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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